식량 파동이 '도화선'… '튀니지' 알제리 등 반정부 시위

이집트 국민들,무바라크 퇴진요구하며 격렬한항쟁

[Cover Story] 중동·아프리카 거센 민주화 바람
중동지역의 최근 민주화 시위는 식료품 가격 인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빵'이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올초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식량 파동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국제 식료품 가격은 치솟기 시작했다.

옥수수와 콩이 주도한 식품가격 쇼크가 밀과 식물성 기름,육류 등으로 번질 것이란 전망 속에 투기자금이 유입됐으며 가격은 폭등했다.

알제리에서는 1주일 만에 주요 식료품 가격이 20% 이상 오르고 인도에서는 카레의 주재료인 양파가 동났다.

튀니지 및 알제리 등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결국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망명을 떠났고 시위 불길은 이집트로 옮겨붙었다.


⊙ 불꽃처럼 번지는 중동의 민주화 시위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시위는 이집트를 넘어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 등 주변국으로 급속도로 확산 중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선 지난 4일 수백명의 시위대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바레인은 수니파가 장기간 집권을 해오며 시아파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이뤄져 왔고 현재도 300~400명의 정치범들을 수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 이슬람 학자연합의 잘랄 알 샤르키는 "이집트는 우리의 스승이며 이번 시위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말했다.

14일에도 시아파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다.

쿠웨이트에서도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다.

이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자 12일 페루 리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랍 · 라틴아메리카 간 정상회의는 14일 이후로 연기되기까지 했다.

민주화 바람의 시발점에서도 시위는 점차 가열되는 분위기다.

튀니지에선 알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달 5일에도 10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강경 진압에 항의하며 경찰서를 습격,최소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디 부지드 지역 등 튀니지 곳곳에선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예멘에서도 지난 3일 2만5000여명의 시위대가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분노의 날' 시위를 벌였다.

그동안 정부의 강경 진압에 소강상태를 보였던 알제리도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준비 중이다.

각국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지난 1일 사미르 리파이 총리 내각을 해산하고 마루프 비키트 전 총리를 재기용했다.

시위대들은 "개혁의 가능성이 낮다"며 반정부 시위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압둘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19년간 계속된 국가비상령 해제를 천명했다.

⊙ 서방세계 반응은 제각각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U는 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열망을 장기적으로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현지를 찾거나 방문 계획을 밝히는 등 적극 대응 중이다.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애슈턴 외교대표는 튀니지 측의 요청에 따라 EU는 튀니지가 민주주의적 제도로 이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에는 △헌법 개정 △비정부기구(NGO) 설립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지원 △경제 및 농업제도 재건 등의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자칫 기존의 중동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점을 우려해 안정을 최우선시하면서 이들 국가의 민주화에 다소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중동 지역 정부들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불만을 치유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한다"면서도 "이집트가 질서 있는 이행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도 이집트가 개혁을 위해 즉각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절차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으나 호스니 무바라크 현 대통령 측이 내놓은 개별적인 수습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일 미국이 이집트 정책과 관련해 민주화보다는 안정을 우선시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이는 이집트 야권의 호응을 얻지 못해 효과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오바마 행정부가 개혁에 대한 지지와 급속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중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기존의 이집트 집권세력에 개혁의 과정과 절차를 주도하도록 맡긴 점은 민주화보다는 안정을 우선한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고 전했다.

⊙ 향후 전망은

일단 민주화 요구의 직접적 원인인 식량수급 문제는 단기간 내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와 올해 계속된 기상이변에 따른 공급 감소와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인한 수급불균형이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전망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 농무부와 FAO는 올해 곡물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2%가량 줄어든 21억9000만~22억1600만t으로 예측했다.

197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곡물 수요량은 1.3% 증가한 22억5400만t이 예상돼 전체적으로 3800만t가량 공급이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4년 만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의 식품소비가 급증세를 보이는 점도 변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같은 개도국의 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설탕 콩 등 기본 식품에서부터 튀김용 기름에 사용되는 식물성 유지까지 소비가 폭증하게 되고 가격도 뛰고 있다"고 우려했다.

관심은 중동의 시위가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다. 최근 중동의 시위 사태는 1989년 동독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이어진 동유럽 민주화와 견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랍 시위는 독재 정권 붕괴뿐만 아니라 수십년 지속돼온 현 아랍 전체 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프라그 카나 뉴아메리카재단(NAF) 선임연구원은 "시위로 붕괴된 정권을 대신해 등장하는 정치체제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체제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산유국으로 비교적 재원이 풍부한 중동 권위주의 정부들은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단을 갖고 있어서다.

실제로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바레인 국왕은 식량가격 급등에 따른 시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보조금과 사회보장비 증액 등을 지시했다.

예멘은 부족 사회고 수단은 인종적으로 분열돼 있어 튀니지,이집트처럼 민주화가 진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