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cc 이상 대형차 중심의 포트폴리오''근육질 남성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디자인''연비보다 우선시되는 동력성능'.지난 수십년간 GM과 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내놓은 신차들은 한결같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쳤고 일본이나 유럽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10일(현지시간) 개막한 2011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미 빅3가 보여준 모습은 달랐다. GM이 경차와 엇비슷한 덩치의 소형차 시보레 소닉을,크라이슬러는 덩치와 연비를 맞바꾼 중형 세단 200을 내놓는 등 앞다퉈 크기가 작은 신모델들을 선보였다. 미국다운 차로 불렸던 픽업트럭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에는 신차가 드물었고 전시 위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었다.

프레스 콘퍼런스에서도 소형차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마거릿 부룩 크라이슬러 소형차 마케팅 디렉터는 "소형차는 기회의 영역이며,이 부문에서 새로운 성장의 열쇠를 찾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미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노력이 다운사이징(소형화)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론 브래그먼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북미 지역에서 소형차가 연간 10만대밖에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미국이 아닌 중국과 브라질에서 소형차 사업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미국 신차의 스타일이 한국이나 일본차처럼 날렵하게 변한 것도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신흥 시장에서 중소형차를 팔기 위해 대중성에서 앞서 있는 한국과 일본차를 과감히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일부 미국 업체들은 신차 인테리어를 설명하며 서슴없이 "일본차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GM 계열 뷰익은 신차 리갈을 소개할 때 '미국의 렉서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미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빅3가 와신상담한 결과가 크기를 줄인 아시아향(向) 자동차로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해 GM이 3년 만에 도요타를 누르고 자동차 업계 선두에 올랐다고 하지만 예전의 영화를 되찾으려면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유럽 업체들이 미 시장을 겨냥한 신차들을 잇따라 내놓은 것도 올해 전시회의 특징 중 하나다. 미국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한 유럽 업체들이 공세로 돌아섰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미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춘 2012년형 파사트를 선보였다. 유럽에서 팔리고 있는 파사트보다 7000달러 저렴한 2만달러로 가격을 책정한 것도 미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조너선 브라우닝 폭스바겐 미주법인 대표는 "폭스바겐은 앞으로 미국 시장을 이끄는 마켓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등 친환경차 열풍은 여전했지만 업체별로 온도차가 있었다. GM은 개막식 때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된 전기차 시보레 볼트를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하이브리드카의 종가인 도요타도 프리우스C,프리우스V 등 하이브리드카 신모델을 최초로 공개했다. 그러나 모터쇼장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가 불투명한 전기차 대신 당장 돈이 되는 저연비차 알리기에 역량을 집중하는 업체들이 늘었다"며 "전기차 열풍이 다소 주춤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디트로이트=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