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차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유력한 후보로 꼽혀 온 이 회장이 고사의 뜻을 명확히 함에 따라 2월 말로 예정된 전경련의 새 회장 추대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 회장은 11일 일본 출장을 떠나며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경련 회장직 수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있고 삼성그룹 자체를 키우는 데도 힘이 벅찬데 전경련까지 맡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출국할 때도 같은 질문에 "일이 하도 많고 몸도 별로 안 좋고(하기 어렵다)"라며 고사 의사를 내비쳤었다.

지난해 7월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을 방문,회장직 수락을 요청했던 전경련은 이 회장의 유보적 반응에도 "시간을 갖고 지켜보자"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막판 설득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추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 회장의 뜻이 확고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경련은 다음 달 말 조석래 회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차기 회장을 추대할 계획이다. 우선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신년 회장단 회의에서 차기 회장 추대에 관한 의견을 모을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관례에 따라 회장단 내 연장자가 수장을 맡는 과도체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회장단 중에서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73)이 최고 연장자이고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70),박용현 두산그룹 회장(68)이 뒤를 잇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는 13일 회장단 회의의 논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출국한 이 회장은 열흘간 일본에 머물며 재계 인사들을 만나고 신년 경영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회장은 출장 배경에 대해 "일본에서 더 배울 게 많다. 한참 배워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겉모양은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을 앞서지만 속(부품)은 아직까지 (일본을) 따라가려면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할 일에 대해서는 "새해도 됐고 해서 기업 관계자들과 여러분들을 만난다. 친구들도 보고…"라고 답했다.

이 회장의 출장에는 부인 홍라희 여사가 동행했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김순택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윤부근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 권오현 반도체사업부 사장이 김포공항에 나와 배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