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이 깨진 낙서 투성이의 건물들,"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실업자들….'2011년 북미 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 개막 하루 전인 9일(현지시간) 미국 북동부 디트로이트 도심의 분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던 2009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풍경이 조금 달라진다. 한가했던 쇼핑센터에 방문객이 몰려들고 새로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주택 거래도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설명이다. 크라이슬러에 근무하는 대니 싱클레어씨는 "자동차업체에 몸담고 있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트로이,노바이 등에는 불황의 그림자가 어느 정도 가시고 있다"며 "계속 높아지던 실업률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금이나마 낮아지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되살아나는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 외곽 베드타운인 사우스필드에서 세탁소를 하는 재미교포 김모씨는 "지난해 이맘때는 하루 종일 들어오는 일감이 와이셔츠 두 장뿐이었지만 요즘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가 늘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는 변화"라며 "현재 거실 딸린 방 3개짜리 콘도(한국의 아파트와 흡사)가 30만~35만달러에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종백 KOTRA 디트로이트 비즈니스센터장은 "퇴원은 이르지만 링거는 뗀 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빅3가 구조조정을 마치면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며 "기존 근로자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현업에 매진하면서 경기가 반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역경제가 예전 수준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에서 일하는 존 스미스 매니저는 "대부분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늘어난 주문을 흡수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원하지만 금융권은 더블딥을 우려해 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제조업체들은 경기를 낙관적으로,금융권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돌아온 빅3,현대 · 기아차는 어디로?

디트로이트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것은 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의 회생 덕이다. 지난해 GM은 미국 시장에서 전년보다 7% 늘어난 221만대의 자동차를 판매,리콜 파문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일본 도요타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GM은 2007년 이후 3년 만에 글로벌 판매량 기준으로 도요타를 누르고 세계 1위 자리에 복귀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도 나란히 미국 판매 대수를 전년 대비 17%씩 늘리며 부활의 신호를 보였다.

현지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빅3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판매 대수 증가가 아닌 체질 개선"이라며 "8개의 브랜드를 4개로 축소한 GM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구조조정이 마무리됐고 재고 물량도 대부분 소진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 빅3의 시장 장악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친환경차 개발을 모토로 내걸고 자국 자동차업체에 대대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는 데다 판매 회복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빅3의 회복세가 본격화되면 현대자동차 등 국내 업체가 예전보다 버거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장 점유율을 7.7%까지 끌어올리며 성장 가도를 달려온 현대 · 기아차의 질주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은 "2009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책임 있는 회복'을 지속해왔다고 자부한다"며 "올해 미국 자동차 시장은 2005~2006년 전성기였던 1600만대에는 못 미치겠지만 지난해보다 150만대가량 늘어난 1300만대 수준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