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곳이 있다. 주로 작은 공장이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해 음악과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어야 효율이 오른단다. 가내 수공업체들에 가보면 지금도 많은 풍경이다. 그런데 길거리에 나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제는 영화 속 배경음악은 있지만 거리에서는 사라졌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지만 캐럴이 없고,스포츠 매장에 가도 신나는 음악이 없고,1등을 달리는 유행가도 길거리에서 들을 수 없다. 바로 저작권법 때문이다.

음악 관련 저작권은 특히 저작권 관련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용허락을 받거나 상대방을 찾아 비용을 지급하기가 어렵다. 어느 누가 한곡 한곡 저작권자를 찾아 허락을 맡겠는가. 저작권 신탁단체가 있다지만 그것도 작곡가 작사가 가수 연주자 등 단체가 나뉘어져 있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그래서 여러가지가 귀찮아 아예 음악을 틀지 않는 곳이 많아진 것이다. 여기다 최근 MP3 등 개인용 휴대음악기기 보급이 늘면서 공유하는 노래나 연주보다는 각자가 알아서 듣는 추세가 확산되는 것도 길거리 음악을 위축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음악이 없으면 길거리엔 소음만이 있다. MP3를 갖고 다니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예전보다 훨씬 비정서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년,20년 전으로 가보자.저작권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음악 산업 무법천지'였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그때가 훨씬 추억거리가 많았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갑자기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있었던 음악다운로드 저작권논쟁이 생각났다. 컴퓨터에서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 냅스터가 나오면서 세계의 음악계는 논쟁에 휩싸였다. 소비자들은 공짜로 쉽게 노래를 받을 수 있어 좋아했지만 음반업계에는 산업기반이 붕괴되는 위기감이 퍼졌다.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던 컴퓨터업계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를 만들어 유료다운로드 서비스를 내놓지 않았으면 세계의 대중음악시장은 붕괴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법이 잘못된 것은 분명히 없다. 남의 권리를 자기 영업에 이용하려면 그 대가를 분명히 내야 한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특히 대중음악을 생각하면 대중에게 다가갈 유통채널이 봉쇄되는 측면도 분명 있다.

이럴 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요를 처음 만들 때 작곡가나 작사가의 목표가 뭐였을까. 그 노래를 녹음할 때 가수와 연주자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 맨 처음의 마음에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와 음악을 즐기게 하자는 것이 전부 아니었을까. 우리도 음악이 좋은 식당,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로 신나는 노래가 있는 스포츠매장 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작 관련 단체들의 전향적 자세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액을 받고 특정한 곡이나 공개음악을 틀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하는 조치는 충분히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지명도 있는 가수 등이 나서는 건 어떨까. 이런 노래는 마음대로 틀어도 좋다고 선언하는 '음악기부''저작권 기부'는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닐까.

도시에 음악이 없다. 그래서 이 겨울이 더욱 스산하다. 크리스마스가 오는지 새해가 밝는지 이제 귀로는 알기 어렵다. 현대의 비극은 이렇게 우리끼리 만들어가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돼야 마땅하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