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잘못된 외교관행 바로잡는 역할”

반 “국제 안보와 개인의 사생활 고려하지않는 파괴적 행동”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을 폭로하면서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위키리크스는 지난달 28일부터 미국의 기밀 외교 문서를 거의 날마다 공개해 왔다.

이 사이트가 확보한 외교 문건은 모두 25만건으로 아직 1%도 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이미 폭로한 내용만으로 미국은 물론 각국 외교라인과 지도자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특히 미국 외교라인 관계자들이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국제적인 인사들의 치부를 다룬 내용과 외교라인에서 비밀스럽게 나눈 대화가 모두 폭로되면서 미국 국무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마저 잃게 될 판이다.

이 사이트는 호주 출신 해커인 줄리언 어샌지가 설립했고 서버가 스웨덴에 있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그 외에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미국의 외교문서를 유출한 용의자로는 미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브래들리 매닝이란 일병이 지목되고 있다.

이라크에서 군생활을 했던 그는 국방부 내부 전산망에 접근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고 그가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미 국무부 외교 전문 폭로 사태가 세계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몰고오면서 위키리크스의 이러한 비밀 문서 폭로가 과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지,민주사회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한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잘못된 외교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폭로 당사자인 어샌지는 비밀문서를 폭로하기 전에 자체적인 검증을 통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 내용만을 폭로한다면서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 활동의 일환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번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보도한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스는 '이번 외교 전문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미국외교의 목표들과 성공 타협, 좌절 등을 그 어떤 자료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지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외에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독일 슈피겔, 스페인 엘파이스 등 위키리크스로부터 전문을 받아 보도에 나선 신문사들과 상당수 시민단체도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 같은 공개행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번 폭로 내용이 국제적인 안보를 심각하게 해치는 정도는 아닌데다 잘못된 외교 관행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이번 폭로로 미국 외교관들이 외국 정상들이나 국제기구 인사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수집해 본국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는데 이 같은 정상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선 첩보활동을 결과적으로 외교관들에게 지시한 미국 정부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만약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없었다면 미국은 이런 비정상적인 첩보활동을 계속했을 것이니 결과적으로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이 같은 잘못된 외교관행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 것이며 밀실외교를 줄이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부기관의 외교활동은 국가안보와 직결되지 않는 한 가능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 반대 측, "국제적인 안보와 개인의 사생활 등을 고려하지 않은 파괴적인 행동이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국인 미국은 당연히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 같은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해 미국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미 국무부는 이번 사태는 정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하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선을 확실하게 긋고,국가 간 평화로운 관계를 파괴하고 방해하는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위키리크스의 대표인 줄리안 어샌지를 간첩죄로 처벌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보수인사들은 "위키리크스의 이번 폭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 정부를 위험에 빠뜨린 반정부 행위"라며 공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들은 위키리크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하면서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국제적인 안보와 개인의 사생활, 그리고 지식재산권 등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은 "전 세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무책임하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무책임한 폭로라는 입장이다.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도 "이번 사태는 세계 외교가의 9 · 11 테러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들 간 신뢰관계도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외교에는 공식화하고 문서화할 수 없는 비공식적인 측면이 있고 외교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이런 부분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폭로되고 외부로 드러난다면 정상적인 외교도 가능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모든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비공식적(informal)인 관계를 외교에서는 전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국가 기간시설 공개 등은 신중해야

폭로 전문 사이트에 의한 이번과 같은 외교전문 공개를 어떻게 봐야 할지는 결코 쉽지 않은 얘기다.

언론에 의한 폭로 기사에 대해서도 개인의 사생활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 일률적인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물며 이런 사이트는 언론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여기서 보호해야 할 사생활을 일반 개인의 사생활과 동일시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기서 알권리를 한 나라 내에서 국민들이 누려야 할 알권리와 같은 측면에서 봐야 하는 지 등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각국의 주요 기간시설 등을 공개한 것은 알카에다 등 국제적인 대규모 테러조직이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면에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키리크스의 행위가 적절했는지 논의와는 별개로 폭로에 대한 처벌 여부는 관련 자료를 취득하는 과정에 해당 국가의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 등에 따라 형사적 내지는 민사적 책임이 따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 이 사이트 개설자인 어샌지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의 국익과 외교활동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그의 외교전문 공개행위가 처벌대상이 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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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2월6일자 A14면

미국의 외교 전문 25만여건을 공개한 위키리크스가 서버 및 도메인을 차단당한 데 이어 돈줄까지 끊기고 있다.

또 해커들의 공격으로 사이트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등 사이버상에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온라인 결제 서비스회사인 페이팔은 이날 성명에서 "위키리크스가 페이팔 사용 규정을 어겼다는 판단에 따라 후원 계좌 접근을 차단했다"고 발표했다.

페이팔은 "불법 활동에 연루된 사람들을 격려하거나 부추기고 돕는 데 페이팔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위키리크스에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페이팔의 결정은 온라인 계좌를 통해 전 세계 소액 후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온 위키리크스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은행 계좌이체와 신용카드 결제 등을 통해 기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시사 주간지 포쿠스는 이날 위키리크스가 외교 전문 공개 이후 전 세계 지지자들로부터 모두 1만5000달러를 기부받았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도메인 서비스 제공업체인 에브리DNS닷넷은 위키리크스 도메인(wikileaks.org) 제공을 중단했다.

50만개의 웹사이트 도메인을 제공하는 에브리DNS닷넷은 최근 익명의 '디도스 공격(DDoS) '으로 네트워크의 다른 부분까지 위협받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주 초에는 아마존닷컴이 위키리크스에 웹서버 제공을 중단했다.

프랑스에서도 위키리크스 접속이 5일 차단됐다.

프랑스 정부는 앞서 "외교 기밀을 깨뜨리는 웹사이트를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뉴욕=이익원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