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과연 더 보여줄 게 있을까.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잡스의 '아이(i) 매직'은 여기서 멈출까,내년에도 계속될까. 요즘 정보기술(IT)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화두다. 잡스의 나이 올해 쉰다섯.5년 뒤면 환갑을 맞는다. 창의력이 감퇴할 때도 됐다.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은 터라 건강도 좋지 않다.

잡스는 스물한살 때인 1976년 애플을 창업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지 1년 뒤다. 이 시차 때문이었을까. 잡스는 동갑내기 게이츠를 이기지 못했고,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야 달라졌다. 애플은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했다. 분기 매출에서도 앞질렀다. 세계 최고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된 것이다.

애플의 요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어보인다. 경기 침체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너나 없이 감원하는 상황에서 거침없이 채용하고 있다. 최근 1년 새 수천명,수만명을 채용했다. 많은 기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고전하는 상황에서 네 분기 연속 매출과 순이익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최근에는 휴렛팩커드(HP)의 첫 캠퍼스 터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애플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할 정도다. 영국에서 5~16세 어린이들에게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냐고 물었다. 1위는 아이폰,2위는 아이팟터치,3위는 아이패드….애플 '아이(i) 트리오'가 1,2,3위를 휩쓸었다. 미국에서도 6~12세 어린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아이패드와 아이팟터치가 1,2위를 차지했고 아이폰은 10위에 올랐다.

잡스의 '아이(i) 매직'은 9년 전에 시작돼 올해 절정에 달했다. 그는 2001년 아이팟이라는 뮤직플레이어와 아이튠즈라는 디지털 음악 거래장터를 개설해 음악 시장을 평정했다. 6년 뒤인 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았고 이듬해에는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 프로그램)을 사고 파는 앱스토어를 열어 휴대폰 시장과 이동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잡스는 올해는 태블릿 PC 아이패드를 내놓고 새로운 '매직'을 펼치고 있다. 전자책을 사고 파는 아이북스도 열었다. 아이패드와 아이북스는 신문 잡지 책 등 종이매체를 혁신하고 있다. 게임기와 넷북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 모토로라 HP 에이서 델 등 휴대폰 메이커와 PC 메이커들은 일제히 아이패드 경쟁 제품을 내놓거나 개발하고 있다.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인근 쿠퍼티노에서 고교를 다녔고,게이츠처럼 대학을 중퇴하고 쿠퍼티노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9년 뒤에는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 CEO에게 밀려 애플을 떠나 12년간 야인생활을 하다가 1997년 CEO로 복귀했다. 애플 복귀 13년 만인 올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천하를 얻은 셈이다.

잡스는 13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아이팟을 내놓은 뒤 9년 동안 어떻게 마술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머큐리뉴스닷컴이란 매체는 최근 애플과 잡스에 관한 장문의 기사에서 성공 비결을 분석해 설명했다. 맨먼저 꼽은 것은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문화다. 애플은 연구 · 개발(R&D)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자사 제품도 잡아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핵심 기술을 다양한 제품에 적용해 디바이스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에코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기사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애플은 아무리 경영환경이 나빠져도 연구 · 개발비를 줄이지 않는다. 지난해 불황이 극에 달했지만 연구 · 개발비를 140억달러로 20% 증액했고,직원도 7%(2300명) 늘렸다. 실리콘밸리 150개 대표기업이 연구 · 개발비를 평균 4% 줄이고 인건비를 6% 삭감한 것과 대조적이다. 9월25일 끝난 2010회계연도에는 직원과 연구 · 개발비를 각각 38% 늘렸다.

이보다 더 혁신적인 것은 자사 제품을 죽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잡스는 자사 제품이 경쟁사 제품에 밀려 죽기 전에 자기 손으로 죽이곤 했다.

2005년 9월에는 아이팟미니를 죽이고 아이팟나노를 내놓았다. 지금은 아이폰이 아이팟터치 시장을 잠식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패드가 자사 맥북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주저하지 않는다.

파괴적 혁신을 하면서도 명확한 청사진을 갖고 일관되게 움직이는 것도 애플의 강점이다. 아이폰 운영체계(OS)는 매킨토시 컴퓨터 OS에서 비롯됐다. 애플은 이 OS를 아이팟터치에도 적용했고 아이패드에도 적용했다. 제품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에코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애플 제품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만 찾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애플의 가장 큰 강점은 잡스가 밝힌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신생기업)'이라는 점이다. 잡스는 애플이 망하기 일보 직전에 CEO로 복귀한 뒤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한가지에 집중했고,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도록 토론을 북돋웠으며 제품기획에서 생산,판매에 이르는 전 부문이 따로 놀지 않게 했다.

현재 궁금한 것은 잡스의 '매직'이 계속되느냐 여부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다. 애플에는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잡스가 있고 스타트업 같은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아이 매직'이 계속될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잡스가 어떤 새로운 매직을 펼칠지 관심거리다.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