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의 대상은 김정일 세력이 아니라 북한 주민
[Cover Story] 북한 주민 수백만 굶어 죽는데 金씨 일가 우상화에만 '혈안'
북한의 잇단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은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화해의 대상이 북한 주민이지 김정일 세력이 아니란 점이다.

북한 주민은 김일성 · 김정일 부자의 세습 독재정권에서 수십년째 고통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 주민이 김정일 세력의 핍박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세워 실행해야 하고,민간은 남북교류와 대북지원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김정일 독재체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안다면,민족화해의 대상이 김정일 세력이 아닌 북한 주민이란 점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김정일을 신적 존재로 우상화

김정일 독재체제는 곧 붕괴될 것처럼 취약해 보이지만 계속 유지되고 있다.

1995~1997년 약 300만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고,지금도 수만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나오는 상황에서 체제가 전복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 답이 있다.

북한은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과 수령이 영도하는 동원체제의 전형이다.

김정일 독재체제는 수령을 우상화하고,소위 현지지도를 통해 인민들을 감동시키며,지도일군들이 현지지도의 내용을 대중운동으로 만드는 기만적인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김정일 우상화를 살펴보자.김정일 우상화는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 독재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심화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을 '걸출한 사상이론가이며 철학자형의 위인'이라고 격찬했다.

김정일의 우상화와 신격화를 위해 '김정일 장군의 노래'도 보급했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은 '태양절'로,김정일 생일인 2월16일은 '민족 최대 명절'로 제정했다.

김정일 우상화는 학교 교육에서도 이뤄진다.

수학 과목에서까지 김정일 관련 문제를 내고,음악 교과서엔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사가 등장한다.

1993년엔 비행훈련 중 김일성 동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기체를 다른 방향으로 추락시키고 사망했다는 길영조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그를 따르도록 독려했다.

이렇게 신적 존재로 우상화된 김정일이 현지지도에 나서면 큰 효과를 발휘한다.

사전에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독재체제가 원하는 대로 인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 같은 특성을 지닌 사회가 북한이라는 말이다.

⊙독재체제 유지하려고 주민 생활 철저하게 감시

김정일 독재체제는 체제 유지를 위해 우상화와 함께 규제 형벌 테러 감시 군사력 경찰력 등과 같은 강제적 수단을 사용한다.

특히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을 감시하고 있다. '3선 · 3일 보고체계'가 대표적이다.

3선은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인민보안성(한국의 경찰에 해당),보위사령부(군 전체를 감시하는 기구)를 말하며,3일은 3일마다 한 번씩 중앙당 조직부에 직접 보고하는 것을 뜻한다.

하위 감시기구로는 15~30세대가 모여 1개 반을 형성하는 인민반이 있고,그 밑에 5호담당선전원이 있어 주민 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이 밖에 혁명사상 연구실이 있다.

김정일은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원인으로 관료부패,지도자의 리더십 부재,지식인과 청년들의 이탈 등을 지적하고,내부단속을 위해 혁명사상 연구실을 전국적으로 10만개 이상 설치했다.

북한에도 체포영장제도는 있지만 인민보안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범인이 재판받는 과정에서도 피의자의 죄질에 따라 형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에 대한 충성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북한이 김정일 독재체제의 이탈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공개처형과 정치수용소 감금,고문,구타,숙청 등이다.

조금이라도 반체제적 요소가 나타나면 주동자를 색출해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재판도 없이 즉결 총살한다.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해 비난하거나 다른 정치적 견해를 밝혔을 때,도서출판물에 게시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오손시키거나 외국의 방송을 청취하는 경우 '반혁명분자''조국의 반역자''인간쓰레기'로 낙인 찍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낸다.

20여만명이 요덕수용소 등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 경제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김정일 세력

김정일 세력의 당면 문제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와 경제적 위기 탈출이다.

정권을 유지하려고 위에서 살펴본대로 우상화와 감시,처형,감금 등을 자행하고 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1998년 헌법을 개정해 생산수단의 소유 주체 및 개인 소유 확대,경제 관리에서 독립채산제 명문화,대외무역의 국가감독권 폐지 등을 명문화했다.

이 같은 헌법 개정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회주의 제도의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비효율성이 생산자 대중들의 무성의와 고용살이식으로 일하는 낡은 사상 잔재라고 비난했으며 김정일 역시 이점을 인정했다.

김정일은 북한의 극작가들이 작품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1년에 한 작품을 써도 생활비는 나오고 한 작품을 더 써도 원고료가 조금밖에 안 나오니까 쓸 의욕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헌법을 보면 북한이라는 국가는 김일성이 창조한 국가이다.

이런 식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 외에는 없다.

북한은 지난 10여년간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에 이은 극심한 식량부족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대부분 북한 주민의 삶은 더욱 비참한 상황에 처했다.

북한은 2002년 7월엔 '7 · 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경제체제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 지배세력의 일관성 없는 조치로 그런 시도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개혁을 방해하는 가장 결정적인 장벽은 무엇일까.

바로 김정일 독재체제이다.

북한의 경제위기와 식량부족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광범위한 경제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광범위한 경제개혁은 김정일 독재체제의 근간을 파괴할 수 있고,김정일 세력은 그 점을 경계한다. 개혁으로 권력을 잃게 되는 세력이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개혁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고 북한 주민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초 화폐개혁에 관한 내각결정 제423호를 발령했다.

화폐개혁을 통해 너무 커버린 시장을 폐쇄시키려는 조치였다.

경제개혁이 김정일 독재체제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