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인출에 급여계좌도 변경..주거래은행 관계 끊나

40년 넘게 동고동락해온 현대차그룹과 외환은행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등을 돌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서 거액의 예금을 인출한 데 이어 직원 급여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바꾸고 있다.

외환은행이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매매 양해각서(MOU)를 맺은 데 따른 `보복성' 조치로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2일 금융권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최근 현대건설 매각 주관사인 외환은행에서 1조5천억원 이상의 예금을 찾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그룹의 주거래 은행이다.

현대차와 외환은행은 모두 1967년 설립돼 그때부터 지금까지 금융거래를 해왔다.

현재 외환은행 계좌에 남아 있는 현대차그룹의 예금은 1천억~2천억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거의 모든 예금을 찾아간 셈이다.

이를 포함한 범현대가(家) 기업들의 외환은행 계좌에 남아 있는 예금은 3천억~4천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대부분의 예금을 인출해 현재 남아 있는 예금이 별로 없다"며 "그러나 외환은행은 유동성에는 별문제가 없고 예금은 다시 예치할 수도 있어서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현대차그룹은 이날 현대차와 기아차 등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외환은행에 급여계좌가 있는 경우 이를 이날 중 다른 은행으로 옮기고 회사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금융권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현대건설 매각을 놓고 현대그룹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외환은행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그룹의 `공격'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도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그룹이 인수자금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출 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MOU를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그러나 "게임에서 심판을 보는 사람한테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은 글로벌 그룹인 현대차그룹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월급계좌 은행을 바꾸는 움직임에 대해 외환은행은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임직원들 월급이야 수시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자금으로, 은행 유동성에 영향을주지 않는다"며 "거래관계를 끊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공과금, 대출, 신용카드 등과 연계돼 있어 얼마나 많은 임직원이 당장 계좌를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예금을 인출하거나 거래를 끊는다고 압박한다면 앞으로 채권단이 인수.합병(M&A)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외환은행과 거래 관계를 끊는 초강수도 둘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건설 매각 문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으면 외환은행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공격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아직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 기업들로부터 거래 중단 요구는 없었다"며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1층에 입점해 있는 외환은행 양재동지점 철수에 대해서도 공식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indi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