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모함은 전투기 이착륙 사고율이 100만회당 2건으로 민간 항공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항공기 이착륙 등 안전에 관련된 일은 12명의 담당자가 동일한 사항을 각각 확인하고 레이더 등 주요 전자부품은 3배가량의 여유분을 확보해 두는 것이 미 항공모함이 최강의 전투력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비결이다.

미 항공모함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맡은 일을 해낼 역량을 갖춘 조직을 미국과 유럽의 경영학계에서는 '고신뢰 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이라고 한다. 고신뢰 조직은 찰스 페로 예일대 교수가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미국 항공우주국(NASA) 특수기동대(SWAT) 등이 실제 조직 운영에 적용해 효과를 얻었다.

고신뢰 조직은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고신뢰 조직은 작은 실패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사소해 보이는 오류라도 같은 실수나 사고가 반복되면 대형 참사의 사전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가 크건 작건 모든 실수와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파악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실패를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실패 사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성공에 도취해 있으면 조직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실패 사례가 적은 조직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거나 실패를 감추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고신뢰 조직은 위기 대응 체계를 일상화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연습을 반복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위기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준비하면 위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페라리의 포뮬러원(F1) 출전팀은 경주 도중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연간 2000회 이상 한다. 이를 통해 페라리팀은 중간 정비 시간을 다른 팀보다 30% 이상 단축했고,예상치 못했던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셋째,고신뢰 조직은 운영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여유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 둔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어야 여러 가지 해결책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여유 자원은 조직 내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넷째,고신뢰 조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권한을 조직 전체에 분산한다. 권한이 상부에 집중되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위험도 높아지며,위급한 상황에서는 관련 정보가 풍부한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권한이 분산된 수평적 조직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구성원을 확보해야 한다.

고신뢰 조직은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 환경에서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가속페달 결함으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은 도요타 사례에서 보듯 기업은 한 차례의 위기만으로도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업은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고신뢰 조직의 운영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김상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b.a.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