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을지로 하나금융지주 회장실.김승유 회장이 다급하게 경영진을 불러 모았다. 참석자는 김 회장을 비롯 김종열 하나금융 사장,김정태 하나은행장,이현주 하나금융 전략담당 부사장 등 4명.김 회장은 거두절미하고 말을 꺼냈다. "외환은행으로 합시다. "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나금융은 올해초부터 우리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을 두고 저울질을 해왔다. 마침내 결론이 났다.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13일엔 실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24일엔 이사회에서 승인받았다. 금융계에서는 "김승유 회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하나금융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상반기만 해도 우리금융에 관심이 많았지만…

올해초만 해도 김 회장은 독자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둘러싼 '메가뱅크' 논의가 거셌지만,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작지만 경쟁력있는 은행이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국내 금융그룹 4위라고 했지만 3위인 신한금융지주와는 총자산이 100조원이상 차이났다. 김 회장은 마음을 바꿔 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이때부터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을 놓고 저울질을 시작했다.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을 담당하는 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매달 우리금융과 외환은행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하나금융 경영진의 마음은 "80%가량 우리금융에 가 있었다"(김종열 사장)고 한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쓰라린 기억도 있었다. 2006년 3월 외환은행 인수전에 나섰다가 국민은행에 고배를 들었다. 김 회장은 6월 사석에서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좋은데 론스타가 너무 비싼 값을 부른다"고 털어놨다. "주당 1만3000원대면 해볼만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는 호주ANZ은행 등이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을 표명했고,농협 신용부문도 론스타와 접촉하며 인수의사를 활발히 타진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은 7월들어 긴박해졌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우리금융에 관심있다"고 말하면서부터다. 당연히 우리금융의 잠재적 인수후보였던 하나금융에도 관심이 쏠렸다. 김 회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서도 "소문난 연애치고 성사되는걸 보지 못했다"는 말로 불편함을 나타냈다.

◆10월들어 외환은행으로 급속히 기울어

김 회장의 마음이 외환은행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10월부터다. ANZ은행이 터무니없이 낮은 인수가를 제시하는 통에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했다. 10월 8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김 회장은 론스타를 직 · 간접적으로 접촉했다. ANZ은행의 시간끌기 작전에 론스타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론스타의 매각 희망가격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점도 느꼈다.

출장에서 돌아온 김 회장은 "본격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소문난 연애론'을 꺼내며 '절대 보안'을 강조한 것은 물론이다. 몇번의 접촉끝에 경영권 프리미엄 10%를 얹어주는 수준이라면 인수할수 있다고 결론맺었다. 9월말 외환은행의 장부가치는 주당 1만2750원.10%를 더하면 1만4000원 수준이다. 총 4조7000억원 안팎이었다.

이 수준에 론스타가 반응을 보이자 협상은 거칠게 없었다. 김 회장은 13일 싱가포르로 날아가 MOU를 맺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16일.외신이 MOU 체결사실을 보도하면서 인수추진 사실이 알려졌다. 외환은행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사전 보고를 받지 못했던 감독당국도 펄쩍 뛰었다. 김 회장은 직접 기자들을 만나 "26일전까지 결론낼 것"이라며 외환은행 인수를 기정사실화했다.

◆승부사 김 회장의 마지막 선택은?

김 회장은 하나금융의 살아있는 역사다. 1965년 한일은행에서 은행생활을 시작한뒤 1976년 하나금융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으로 옮겼다. 전무로 일하던 1991년 하나은행으로 전환하는데 앞장섰다.

1997년 하나은행장에 오른 김 회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대형화에 나섰다. 1998년 충청은행을,1999년 보람은행을 차례로 합병했다. 2002년엔 서울은행도 통합했다. 2005년엔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해 금융지주회사로 변신했다.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에게도 실패가 있었다. 2006년 외환은행과 LG투자증권 인수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당시의 패배를 김 회장은 잊지 못했고 이번 외환은행 인수에 승부수를 던졌다"는게 하나금융 관계자의 말이다.

김 회장이 하나금융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내년 3월이 임기지만 "김 회장없는 하나금융은 생각할 수 없다"는게 하나금융 직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빠른 판단력,조직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오늘의 하나금융을 일궜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61학번)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주목의 대상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비해 지나치게 오래 '집권' 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외환은행 인수로 45년 금융인생에서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쓴 김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년 3월 임기 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