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 개혁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대학의 특성에 맞게 고품질의 인력을 양성하고,연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서로 경쟁하면서 대학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자체 판단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고 고품질 교육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평준화 · 획일화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정부의 일괄적 규제와 지원은 대학의 자율권을 상당 부분 훼손해 왔으며 이 같은 정책은 사실상 대학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21세기 정보지식 · 국제화 사회에 걸맞게 개방성과 유연성, 수월성을 추구하는 노력에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대학의 자율성은 법인화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국립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법인화 법안이 작년 12월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으나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상임위에조차 상정되지 못해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계속 받으면서 대학 운영의 상당 부분에서 자율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며,다른 국립대학들도 법인화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면 정부기관처럼 운영되던 국립대학이 독립된 조직으로서 독자적인 발전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공무원 신분에 묶인 획일적인 보수 체계를 깨고 성과급제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으며,세계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자율적인 프로그램 개발에도 유연성을 갖게 될 것이다.

서울대 등의 국립대학이 지금처럼 정부의 각종 통제와 간섭을 받으면서 세계 일류대학들과 경쟁하는 것은 무리다.

영국 더 타임스가 지난달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서울대는 작년 47위에서 올해 50위로 하락했다. 지방 국립대들은 300위 안에 든 대학이 하나도 없으며,더욱 걱정인 것은 지난 20여년간 지방 국립대의 위상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권에서 보면 도쿄대가 24위,베이징대가 47위로 서울대보다 높으며,이들 대학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아시아권은 물론 유럽,미국,호주 등의 국립 (또는 주립)대학들은 이미 법인화돼 운영되고 있으며,일본도 2004년에 전국의 89개 국립대학을 모두 법인화했다. 일본 국립대학의 법인화 과정과 결과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논리로 다른 국립대와의 균형 붕괴와 대학교육의 공공성 훼손을 지적한다. 서울대가 법인화를 통해 경쟁력이 강화되고 이를 모델 삼아 지방 국립대들도 법인화 과정을 통해 개혁된다면 국립대의 공멸화 위기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립대들의 동반 추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인화는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인화가 이뤄져도 국립대학법인으로 남아 있게 되며,공공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반대 논리로는 법인화가 기초학문의 고사와 등록금의 대폭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도 잘못된 주장이다. 서울대 법인화법에는 기초학문의 육성을 명문화하고 있으며,법인화에 따른 국고지원금을 기초학문 지원에 집중 배정하면 되는 것이다.

등록금은 거의 인상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법인화 진행과정을 보면 2004년 이후 도쿄대 등록금은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대학 재정을 등록금에 의지하지 않고 경영합리화나 자구노력을 통한 수입원 개발에 나서기 때문이다.

국립대 법인화를 방치하고 현재와 같이 대학교육 정책을 평준화 · 획일화로 계속 끌고 가는 것은 결국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먼 장래를 내다보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울대 법인화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다른 국립대들도 법인화의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박성현 <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