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전진기지 · 해상교통 요충지 · 해저자원 '눈독'
[Cover Story] 中 · 日, 센카쿠 열도놓고 또 '티격태격'···섬은 국제 영토 분쟁 진원지

중국과 일본이 영토분쟁을 벌이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동중국해의 남부에 있는 5개의 작은 섬과 3개의 암초로 구성돼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쪽으로 420㎞,일본 최남단 이시가키지마에서 175㎞,중국 본토에서 350㎞,대만에서 190㎞ 떨어진 무인도다.

일본은 1884년 고가 다쓰시로가 센카쿠열도를 발견해 1895년 오키나와현 영토에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였던 것을 청 · 일전쟁 뒤 불평등한 시모노세키조약(1895년)을 통해 일본이 빼앗아갔다고 반발한다.

센카쿠열도 외에도 일본은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4개 섬,한국과는 독도를 놓고 영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맞서고 있는 데 비해,러시아와 한국이 지배하는 쿠릴열도 4개 섬과 독도에 대해선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내세우는 상황이다.



⊙ 중 · 일,안보와 자원 확보 위해 센카쿠열도 놓고 갈등



[Cover Story] 中 · 日, 센카쿠 열도놓고 또 '티격태격'···섬은 국제 영토 분쟁 진원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미 · 일 협조외교,미 · 일 안보조약,경제중심주의 등을 외교의 기본 노선으로 삼았다.

패전 이후 199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관료와 집권 자민당 보수세력은 이 노선에 따라 개헌이나 군비확장 영토분쟁 등을 지양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영토분쟁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잠복해 있었다.

센카쿠열도 문제도 1978년 중국 덩샤오핑과 일본 총리 후쿠다 다케오가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면서 분쟁 해결을 후세에 맡기자는 '차세대 연기론'을 채택해 넘어갔다.

하지만 1996년부터 일본은 자민당 정권이 보수적 정치 노선을 강화하고,중국과도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면서 센카쿠열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앞서 1992년 중국이 센카쿠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해법을 통과시킨 것도 일본을 자극했다.

2004년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을 계기로 센카쿠열도 갈등이 본격화됐다.

그해 3월 센카쿠열도에 상륙한 중국인 7명을 일본이 체포하자,중국은 국제법 위반행위라며 일본을 맹비난했다.

일본이 7명을 강제퇴거 형식으로 풀어주면서 극단적인 위기 상황은 모면했지만,양국 간 갈등은 한층 심화됐다.

센카쿠열도는 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중국으로선 자국 군사력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이고,일본엔 페르시아-인도양-말라카해협-동중국해-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해상교통로의 요충지이다.

해저자원도 양국이 센카쿠열도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센카쿠열도 주변 수역엔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센카쿠열도를 차지할 경우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할 수 있어 막대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 러시아와 일본은 쿠릴열도 4개 섬 영토 분쟁

러시아와 일본이 갈등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은 이투루프 쿠나시르 하보마이 시코탄 등이다.

이 가운데 길이 200㎞,너비 30㎞인 이투루프의 면적이 가장 넓다.

4개 섬의 면적을 합하면 제주도의 약 3배에 달한다.

이들 섬 주변 해역은 수심이 깊은 부동해라서 전략적 요충지다.

수심이 깊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발굴하기엔 경제성이 불투명하지만,새로운 에너지원인 메탄 하이드레이트(해저나 동토 지역에 메탄과 물이 얼어붙어 얼음 형태를 띤 연료)가 대량으로 매장된 사실이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4개 섬은 1855년 러시아와 일본이 맺은 화친조약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됐다.

1905년 러 · 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조약으로 4개 섬을 포함한 사할린 남부지역까지 영유권을 확장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소련이 1945년 얄타협정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4개 섬을 점령해 실효적 지배를 지속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일본인 1만7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모두 강제 퇴거당했다. 이후 스탈린 정권은 러시아인을 강제 이주시켰다.

독도 문제는 어떤가.

한국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울릉도를 거점으로 한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됐다는 점,1693년 안용복 사건 때 일본에 대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점,1900년의 칙령 41호에 의해 한국이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일본의 패전 이후 포츠담선언에 의해 독도가 한국 영토로 조치돼 한국이 실효적 점유를 하게 됐다는 점 등은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방해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장함으로써 영토분쟁 지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 섬과 관련된 국제적 분쟁 끊이지 않아

지구상에는 대략 50만개의 섬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섬들의 총 면적은 육지의 약 7%를 차지한다. 섬이 국제적으로 중요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본토와 같이 섬 주변에도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등 다양한 해양관할수역을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유엔해양법협약이 체결된 이후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으며,밀물 때에도 수면 위에 있으며,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을 섬이라고 규정한다.

이 협약은 무엇이 섬인지와 섬이 어떤 관할수역을 갖는지 등은 규정하고 있지만,섬과 관련된 국제적 분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섬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분쟁들은 국제재판이나 양자협정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센카쿠열도 분쟁처럼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국제재판으로 해결된 대표적인 사례는 클리퍼튼섬 사건이다. 클리퍼튼섬은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남서쪽으로 1078㎞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무인도다.

1858년 프랑스가 자국의 주권을 선포한 뒤 1897년 멕시코가 이 섬에 국기를 게양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1931년 국제재판에서 멕시코는 1836년 스페인 해군이 프랑스보다 먼저 이 섬을 발견했고,멕시코가 그것을 승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재판소는 스페인에 의한 발견이 증명되지 않았고,그 후 멕시코의 주권 행사도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프랑스는 1858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하와이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을 통해 지역 신문에 그 사실을 공표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프랑스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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