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대리인 문제가 아니라 황제 대리인 문제다. "

신한금융지주 내분 사태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리인 문제'란 전문 경영인이 대주주와 이해관계가 다를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황제대리인 문제'는 지배적인 대주주가 없을 때 전문경영인이 주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은행에 주인이 없는 한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은행의 소유지분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금지

우리나라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9%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산업자본의 지분율이 4%를 넘고 경영에 관여한다고 인정될 경우엔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자본의 경우는 지분이 10%,25%,33%를 넘을 때마다 금융위 승인을 거치면 될 뿐 한도 규제는 없다. 지방은행은 산업자본이 15%까지 보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은행들은 반기에 한 번씩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까다롭게 금산(金産)분리를 해놓은 것은 공공성이 강한 은행을 기업이 소유할 경우 자칫 사(私)금고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도 상당하다. 당장 우리금융지주 민영화가 그렇다. 정부지분(56.97%)을 한꺼번에 인수할 주체가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금융이 추진하는 '과점주주방식'과 하나금융이 추진하는 '합병방식'밖에 없다. 신한금융처럼 최고경영자(CEO)들이 주인행세를 하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감독 통해 사금고화 방지가능"

은행 소유지분 제한을 완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금융감독을 철저히 함으로써 사금고화 우려를 없앨 수 있다고 밝힌다. 국내 기업들도 성장했고 은행 경영도 투명해진 만큼 감독만 철저히 이뤄진다면 소유지분을 완화해도 된다는 주장이다.

강병호 한양대 교수는 "은행 지배구조 문제의 근본원인은 주인이 없다는 데 있다"며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의 사금고화와 이에 따른 부실화 우려는 금융감독을 철저히 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대주주가 있고 대주주 책임 하에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지방은행 모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대구 · 부산 · 전북은행 등에는 각각 삼성 · 롯데 · 삼양사 등의 대주주가 있지만 경영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있다"며 "확실한 주인이 있으면 CEO 승계 문제가 생길 리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시기상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여전히 강하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은행은 보험 증권 등 비은행권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금산분리 규제를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투명화가 진전됐지만 금융감독을 철저히 한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피해갈 수 있다"며 "은행 대주주인 기업이 부실화되면 리스크가 고스란히 은행으로 옮겨올 수밖에 없어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당국도 아직은 금산분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차명계좌 비자금 등) 최근 발생하는 문제를 보면 아무리 법률적으로 방어막을 쳐놓는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망할 위기 때는 위법이고 뭐고 없이 일단 돈을 써서 살리고 보자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산업자본 중 아직 은행 지분 4%를 보유한 곳도 없는 만큼 은행 지분 보유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