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중 무림P&P 대표(60)는 작년 11월 '펄프-제지 일관화공장'(이하 일관화공장)을 짓기 시작한 이후 올 3월까지 서울 본사보다 울산에 머무는 날이 많았다. 일주일에 5일은 건설 현장에서 보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공장을 찾는다. 울산 일관화공장에 대한 김 사장의 애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공(功)을 들인 덕분일까. 국내에서 처음으로 펄프-제지 일관화 생산시설을 갖춘 무림P&P 울산공장은 현재 공사 진행률 88%로 '8부 능선'을 넘어 순항 중이다.

무림P&P를 통해 국내 제지업계 판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 대표를 4일 서울 신사동 무림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무림페이퍼와 무림SP 최고경영자(CEO)를 겸임하고 있는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울산 일관화공장은 무림그룹의 꿈이자 생명"이라고 정의했다. '너무 거창한 표현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룹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미래를 걸었으니 당연한 표현"이라고 답했다. 그는 "울산 일관화공장이 무림을 세계 선두의 제지그룹으로 올려놓는 반석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내년 5월 일관화 공장을 가동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효과죠.기존 공장과 비교해 15% 이상 원가절감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경쟁사들은 건조펄프를 사용해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스팀을 두 번 사용하는 격이 되지만, 무림 일관화공장은 건조되지 않은 펄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스팀을 한번만 사용하는 거죠.보통 기름 보일러로 스팀을 한 번 만들어내는데 연간 350억원이 드는데 우리는 이를 고스란히 줄일 수 있습니다."

▼펄프 회사인 무림P&P가 제지사업을 하게 되면 무림페이퍼,무림SP 등 그룹 내 다른 제지회사와 업역(業域)이 겹치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래서 일관화공장 가동을 전후해 사업 재조정을 할 생각입니다. 인쇄용지를 주로 만드는 무림페이퍼 울산공장은 단계적으로 특수지와 고급 아트지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바꿀 겁니다. 대신 일반 인쇄용지는 무림P&P에 맡기는 식으로 사업영역을 조정해야죠."

▼국내 제지시장이 공급과잉인 상황에서 무림P&P의 공장증설을 달가워하지 않는 시각도 있습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게 사실이죠.지금도 국내에서 연간 생산하는 인쇄용지는 300만t인데 이 중 100만t은 해외로 내보내고 있어요. 우리도 일관화공장에서 나오는 물량의 60%를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지만 국내 업체들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렇다고 국내 시장을 감안해 공장을 지으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요. 어차피 국내 내수시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만 안주하기엔 중국 업체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국내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뒤지지만 품질은 낫다고 자부했는데 중국도 내년 상반기에 품질경쟁력을 갖춘 일관화공장을 가동할 만큼 많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

▼선진국 제지회사에 비해 국내 제지업체는 규모 면에서 아직까지 뒤처집니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이 중국,인도네시아 인쇄용지 업체에 최고 313.86%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인쇄용지 시장이 미국인데 중국,인도네시아 업체들은 당분간 미국 수출을 못하게 된 거죠.유럽연합(EU)도 조만간 중국 인쇄용지 회사들에 반덤핑 관세를 매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엔 엄청난 호재죠.그 중에서도 일관화 공장을 통해 15% 원가절감을 할 수 있는 무림P&P가 반사이익을 얻을 겁니다. "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정보기술(IT) 기기 등장으로 제지업계가 위기에 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분명 위기입니다. 하지만 IT가 잠식하는 시장보다 큰 새로운 시장도 열릴 겁니다. 중국 인도 등 종이 소비량이 적은 신흥국이 바로 새 시장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1인당 연간 평균 200㎏의 종이를 쓰는데 비해 중국은 1인당 1년에 60㎏도 안 씁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은 1인당 종이소비량이 20~30㎏밖에 안됩니다. IT기기 확산으로 종이 소비가 많은 선진국 시장 수요가 다소 줄겠지만 신흥시장은 수십 년간 엄청난 종이 수요가 창출될 겁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곳을 신시장으로 꼽을 수 있나요.

"중국입니다. 중국 제지업체들은 1년에 8000만t의 종이를 생산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매년 100~200곳씩 문을 닫고 있습니다. 시설이 노후돼 있는 업체들이 환경규제 탓에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죠.중국 제지업체가 수천 곳에 달한다고 하지만 경제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현지업체 생산량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요. 공급과잉을 겪는 한국 업체들엔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겁니다. "

▼무림P&P를 통해 해외에 조림(造林)지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나요.

"전 세계에 수천 개의 제지공장이 있지만 목재생산-펄프-종이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룬 곳은 10%도 채 안됩니다. 무림그룹은 세계 정상급 제지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연초부터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 조림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선 6만5000㏊급 부지에 대해 현지 정부에 조림사업 허가를 신청해둔 상태입니다. 연말께 결론이 날 겁니다. 캄보디아에도 3만~5만㏊의 부지를 놓고 타당성을 검토 중입니다. "

▼향후 제지공장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은 없습니까.

"당연히 생각하고 있죠.지금 짓고 있는 무림P&P 1기 공장을 완공한 후 국내외 제지시장 상황을 봐 가면서 2기,3기 공장을 지을 겁니다. 2기 공장은 1기와 마찬가지로 5000억원가량을 투입해 연간 45만t의 아트지를 생산하는 규모로 짓고 3기 공장은 좀 더 시간을 갖고 검토해 볼 생각입니다. 2기와 3기 공장을 완공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10년 후 무림그룹의 모습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지금은 무림페이퍼와 무림SP 생산량을 합쳐도 전 세계 제지회사 가운데 86위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무림P&P 일관화공장이 양산을 시작하면 50위권에 들 수 있을 겁니다. 추가로 무림P&P의 2 · 3기 공장을 지으면 규모 면에서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품질 면에선 선두업체로 올라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