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사생아란 말인가. 정실부인 자식 못지 않게 마음은 고상하고 외모 또한 이렇게 준수한데.재미없고 김 빠진 잠자리에서 만들어진 바보 무리를 봐.남의 눈을 피해 자연의 욕망으로 생겨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생명의 요소와 활기찬 소질을 타고 나는 게 아닐까. "

셰익스피어 작 '리어왕'에 나오는 글로스터 백작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의 대사다. 그는 서자인데다 적자인 형(에드거)보다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재산 상속을 못받게 되자 설움과 적개심에 불탄 나머지 형의 모든 걸 빼앗겠다고 다짐하곤 아버지를 속여 형을 내쫓는다.

혼외자식으로 태어나 대우받지 못하는 건 동서양 모두 마찬가지.우리 문학 속 서자의 대표 격인 홍길동의 처지는 더 딱하다. 그러나 혼외자식으로서의 수모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다르다. 에드먼드가 이복형에게 복수의 칼날을 빼든 반면 홍길동은 세상을 바꾸려 들었다.

어쨌거나 혼외 자식은 세월에 관계 없이 갈등과 사건을 만든다. 국내 TV드라마의 경우 출생의 비밀이 없으면 진행이 안된다고 할 정도인 것만 봐도 그렇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혼외 자식의 태도와 행동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에드먼드처럼 출세에 눈이 멀어 이복형을 망가뜨리고 자신도 파멸하는 유형('하얀 거짓말' 강정우)과 한량 노릇으로 정실부인과 적자의 질시를 면하려 드는 유형('천만번 사랑해' 백강호)이 그것이다. 여자도 비슷하다. 보통은 혼외 자식이 그악스럽지만 반대인 수도 없지 않다.

드라마가 괜히 만들어지는 건 아닐 터.친족법을 공부하다 보면 현실이 아침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게 실감난다고 할 지경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혼외 자식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거니와 재벌가는 더하다.

누가 누구의 아이를 낳았다는 둥 믿거나 말거나 식의 온갖 루머가 나도는 가운데 미국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된 한 여성의 출신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삼성그룹 창업주 외손녀라고 주장하는 이 여성의 말에 대해 일부 언론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자 삼성 측은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조사 결과가 어떻든 가족들의 마음엔 멍이 들 테지만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차제에 분명히 해뒀으면 싶다. 다들 남의 가족사에 지나치게 참견하지도 말 일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