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밸리 와인의 성공 비결
지난해 6월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인트 헬레나의 메도우드 리조트(Meadowood Resort).오프라 윈프리와 제이 레노 등 유명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나파밸리 와인 옥션'에서 한 종류의 와인 매그넘(1.5ℓ) 사이즈 6병이 50만달러에 낙찰됐다. 프랑스 보르도산(産) 최고등급 와인이 아니었다. 나파밸리산 컬트 와인(cult wine) '스크리밍 이글 1992년 빈티지'였다.

미국에서 나파산 컬트 와인의 인기는 상상 밖이다. 각종 와인 경매와 이베이 등에 나오면 순식간에 수천~수만달러에 팔려 나간다. 월가의 와인펀드들이 반드시 투자하는 종목이 된 지도 오래다.
[BIZ Trend] Best Practice‥포도나무끼리도 경쟁…최고 와인을 향한 나파밸리의 고집

◆로버트 몬다비가 이끈 고급화

나파 와인이 유명세를 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9세기 말 나파밸리를 여행한 뒤 남긴 단편소설(The Silverado Squatters)에서 저급한 이미지를 가진 나파 와인을 팔기 위해 허위로 스페인산 라벨을 붙이는 행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금주법에 밀려 황폐해진 나파밸리엔 1970년대에야 제대로 된 대형 와이너리가 등장했으며,1990년까지만 해도 소매가격 15달러 미만의 중 · 저가 와인을 주로 만들어 냈다.

이런 나파 와인을 고급화한 데는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를 빼놓을 수 없다. 몬다비는 미국 와인을 세계적인 와인으로 키우겠다며 1978년 보르도의 와인 명가(名家) 바롱 필립 드 로칠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와 합작해 오퍼스원을 만들었다.

오퍼스원은 보르도를 벤치마킹했다. 포도나무를 촘촘히 심고,프랑스산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켰다. 1979년에 첫 빈티지를 선보인 오퍼스원은 미국 와인으로는 처음으로 50달러대에 거래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 언론은 당시 최고가 와인이 15~20달러에 거래된 사실을 비교하며 "오퍼스가 이겼다(Opus won!)"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나파밸리에 투자해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 도전하기 시작했다. 컬트 와인의 시작이다.

◆까다로운 생산과정

컬트가 '종교적으로 숭배한다'는 뜻인 것처럼 컬트 와인도 일부 와인애호가에게 숭배되는 와인을 말한다. 1990년대 나파밸리의 일부 와인이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는 등 최고급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유래됐다.

나파의 5대 컬트 와인으로 자리잡은 것은 스크리밍 이글을 비롯해 할란,콜긴,아로호,브라이언트 패밀리 등이다. 이들 와인의 소매가는 한 병당 300~500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한 회원에게만 1년에 3병 등 제한적으로 판매한다. 대부분 수천 케이스 이내로 소량 생산하는 데 비해 사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자만 수천명에 달하며,이들은 기존 회원이 사망 등의 이유로 빠져야만 기회를 얻게 된다. 일반인이 사려면 이베이 등에 흘러나오는 물량을 소매가보다 2배 이상 비싼 값에 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컬트 와인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뛰어난 품질이다. 생산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컬트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는 최고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이들은 나파에서도 가장 위치가 좋은 포도밭을 갖고 있다. 화산재 토양으로 영양분이 풍부하며,바위가 많고 경사져 물이 잘 빠지는 데다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처음 포도나무를 심고는 최장 12년까지 상업적 와인 생산을 미룬다.

포도나무는 1m 안팎 간격으로 촘촘히 심는다. 나무 사이의 경쟁을 유발해 소출이 줄어도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경쟁에서 도태된 포도는 수시로 잘라낸다. 수작업으로 수확한 포도는 발효 전에 숙련공들이 일일이 걸러낸다. 이 때문에 나파밸리 평균 수확량이 1에이커(4046㎡)당 포도 5t이며, 저가 와인용 포도는 20t까지 수확되기도 하지만,컬트와인은 2t 정도만 거둔다. 와이너리 '다나 에스테이트'의 캐머룬 보우터 생산책임자는 "고급 와인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한다"며 "포도작황이 좋지 않으면 한 병도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오크,시멘트 등 3가지 발효통을 갖춰 놓고 포도품종과 성격에 따라 가장 적합한 곳에서 압착하지 않고 자연발효시킨다. 1차 발효가 끝나면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통당 와인 300병 정도를 얻을 수 있는 프랑스산 '바리크'(225ℓ 오크통)는 미국산의 2배가 넘는 1200달러에 달한다.

숙성할 때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많은 오크통을 쌓기 위해 4~5층까지 쌓는다. 그러나 컬트 와인은 오크통을 바닥에 한 층으로 깐다. 포도주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작업할 때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많아야 1000~5000상자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다.

생산방식은 보르도 최고등급 와이너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적은 수량을 만드는 만큼 실험적인 기술을 도입하는 데 빠르다. 최근엔 새벽 서리가 포도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센서를 달아 서리를 날리는 기계를 가동한다. 포도나무에 센서를 부착해 스트레스 단계를 분석,물 공급을 조절하기도 한다.

◆나파,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컬트 와인은 수작업이 많아 한 병당 수백달러씩을 받아도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나파의 일부 와이너리가 컬트 와인을 고집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돈벌이보다는 세계 최고인 보르도산 최고등급 와인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컬트 와인 콜긴을 만드는 앤 콜긴은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컬트 와인을 만들면서 나파는 거듭났다. 최고급 와인 산지로 인정받으면서 와이너리를 사려는 전 세계 부자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1에이커의 포도밭이 50만달러 수준에 팔렸다. 시골 땅 치고는 미국 최고 수준이다.

미국와인협회는 와인과 관련, 작년에 2070여만명이 캘리포니아주를 방문해 21억여달러를 쓴 것으로 집계했다. 82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1218억여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나파밸리(미국)=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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