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는 이달 초 독일 지멘스의 전력설비 운영시스템인 '스카다(Scada)'를 감염시킨 신종 웜 바이러스 '스턱스넷'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자 전용 백신제품을 내놨다. 그 덕에 국내에는 '사이버 핵폭탄'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치던 스턱스넷이 발도 붙이지 못했다. 시만텍 맥아피 등 글로벌 보안업체들도 전용 백신을 선보였지만,안철수연구소의 제품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보적 보안기술 명성

안철수연구소는 국내에 사이버 침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7 · 7 사이버 대란 때도 안철수연구소는 분산서비스거부(DDoS)에 동원된 좀비PC를 신속히 분석해 향후 공격 형태를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악성코드 분석은 물론 좀비PC 퇴치 작업 등을 안철수연구소에 크게 의존했다.

악성코드를 치료하는 컴퓨터 백신도 국내 보안업체 중에서 가장 빨리 배포했다. 컴퓨터 백신을 다운로드 받으려는 사람들이 안철수연구소 홈페이지로 몰려드는 바람에 접속 장애가 빚어졌을 정도로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신뢰가 컸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안철수연구소는 유명세를 탔다. 2006년 일본에서 파일공유 프로그램을 통한 악성코드가 유행했을 때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손을 쓰지 못했다. 일본 컴퓨터백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시만텍 등 외국 업체들이 제때 대응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안철수연구소 일본법인은 급히 백신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호평을 받았다.

안철수연구소의 창업자인 안철수 이사회 의장이 토종 보안업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1997년 해외의 한 보안업체가 1000만달러에 안철수연구소 인수를 제의했지만,안 의장이 국내 보안 시장은 우리 기업이 지켜야 한다는 소신으로 단호히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종합보안서비스기업으로 탈바꿈

안철수연구소는 컴퓨터백신의 대명사인 'V3'에 집중돼 있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종합보안서비스업체로 거듭나고 있다. 보안 제품 개발은 물론 보안시스템 구축 컨설팅과 운영 · 관리 등 보안서비스의 전 과정에 걸쳐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위해 하드웨어업체 유니포인트와 관제서비스업체 안랩코코넛을 인수했고,보안컨설팅 전문인력을 강화해왔다. 이에 힘입어 회사 매출에서 V3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70%에서 지난해에는 50% 안팎으로 낮아졌다.

조시행 연구개발 총괄상무는 "기업의 보안 시스템을 원격으로 관리해주는 침해사고대응센터(CERT)와 악성코드를 분석하고 긴급대응하는 시큐리티대응센터(ASEC)를 모두 갖고 있는 보안회사는 전 세계에서 안철수연구소가 유일하다"며 "신속하면서도 차별화된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승부수 던진다

국내 벤처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안철수연구소는 최근 성장세가 5% 안팎에 머물고 있다. 국내 보안시장이 협소한 데다 글로벌 보안업체들에 밀려 해외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탓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향후 3~5년 뒤 비약적인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IT 패러다임이 모바일로 급격하게 바뀌면서 사업 기회가 생겨나고 있어서다.

안철수연구소는 모바일과 산업 특화 보안솔루션 분야 등의 성장성이 클 것으로 판단,이 분야에 회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올초 모바일 사업팀을 별도로 구성하고 인력을 충원했다. 스마트폰 확산 등으로 모바일 보안 소프트웨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데 대응하기 위해서다. 올초 출시한 'V3 모바일' 시리즈는 이미 국내 대다수의 은행과 증권사들이 도입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V3모바일은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태블릿PC 갤럭시탭에도 탑재됐다.

온라인 상에서 원격으로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악성코드 정보를 중앙 서버에서 관리하면서 원격으로 기업체 등의 PC 보안을 관리하는 '스마트 디펜스' 기술을 개발,중소기업을 타깃으로 원격 보안 서비스를 출시했다.

산업 특화 보안 솔루션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범용 제품만으로는 각 기업들이 처한 특수한 보안 위협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온라인게임 보안 솔루션 '핵쉴드'와 온라인 금융 · 상거래 보안 솔루션 'AOS'에 이어 올초 공장 자동화 기기 및 점포판매시스템(POS) 전용 솔루션 '트러스라인'을 내놓았다. 온라인게임의 해킹을 차단해주는 핵쉴드는 20여개국 70개 게임에 공급되면서 안철수연구소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러스라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설비에 도입되는 등 주목받고 있다.

◆신사업 개척 속도낸다

안철수연구소는 모바일 사업을 중심으로 신사업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김홍선 사장은 최근 기회 있을 때마다 "모바일 관련 소프트웨어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IT 산업의 키워드가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바뀐 만큼 이 분야에서 정보보안 관련 사업 모델을 새로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이달 초 소셜네트워크게임(SNG) 사내 벤처였던 고슴도치플러스를 노리타운 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꾸면서 분사했다. 노리타운 스튜디오는 해피아이돌 등 인기 게임타이틀을 내세워 국내 SNG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페이스북용 게임 '캐치미이프유캔'은 이용자가 30만명을 넘었다. 해피아이돌은 일본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믹시'를 통해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모바일 관련 사내 벤처를 더 운영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섰다. 한글과컴퓨터 인수를 검토했고,지금도 국내는 물론 해외의 기술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업체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이 830억원에 이르러 M&A '실탄'도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