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2% 포인트 UP] (3) 싱가포르 의료관광객 작년 63만명…'영리병원' 없는 한국 6만명
"병원과 경쟁하지 않는다. 특급 호텔이 우리의 경쟁 상대다. "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병원그룹 파크웨이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내세운 홍보 문구다. 실제 싱가포르의 대형 병원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금박을 입힌 탁자와 월풀 목조 등을 갖춘 호화 병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쇼핑몰 문화센터 등의 다양한 편의 시설은 기본이다. 철저한 개인 사생활 보호와 전담 간호사 등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고은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싱가포르 엘리자베스병원과 래플즈병원 등의 스위트룸 하루 이용료는 수백만원에 달하지만 외국인 환자들의 예약이 쇄도해 진료를 받으려면 최소한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며 "이는 싱가포르가 아시아에서는 맨 처음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도입하면서 의료산업 경쟁력을 키웠고 의료관광을 대박 산업으로 일궈낸 결과"라고 말했다.

◆의료 여행수지 적자

'6만201명 대 63만명.' 10배가 넘게 차이나는 이 수치는 지난해 한국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광 활성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3년까지 외국인 환자 13만명을 유치한다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작년 5월부터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관 등록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섰다. 그 덕에 지난해 유치한 외국인 환자 수는 전년(2만748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의료관광 선진국인 싱가포르에 비하면 미미한 실적이다.

한국의 지난해 해외 의료관광 여행수지는 132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적자폭이 4600만달러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십만명 해외 환자 유치 가능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의료시장은 2004년 400억달러에서 2012년 10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 외에도 의료관광 선진국인 태국 인도 등의 해외 유치 환자 수는 연간 수십만명이 넘는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의료관광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는 1983년 보건의료 개혁을 통해 기업이나 외국인 등을 포함해 누구나 병원을 설립하거나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병원들은 민간 부문의 투자를 받아 병실을 고급화하고 첨단 의료기기를 확보했다. 싱가포르는 병원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자 1997년 해외 환자 유치를 목표로 하는 보건의료 허브화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를 찾는 해외 환자는 1999년 8만9000명에서 2000년 14만7000명,2004년 40만명,2009년 63만명으로 급증했다.

◆생산유발 효과 1조7000억~4조8000억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매년 환자 30만명을 해외에서 유치한다면 생산유발 효과는 1조7000억~4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보건산업진흥원의 분석이다. 외국에서 온 환자는 통상 국내 환자의 평균 진료비보다 2~5배 많은 진료비를 내고 입원일은 평균 8일 정도 된다. 이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도 1만3000~3만7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심혈관질환이나 특정 암 및 성형,치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의료비도 의료관광에 유리한 여건이다. 자본이 병원 분야에 대거 투입돼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성 기획재정부 미래전략정책관(국장)은 그러나 "영리 병원 도입은 진입규제를 낮춰 경쟁을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경쟁 활성화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가격 인하는 물론 서비스 질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고영선 KDI 재정 · 사회정책연구부장은 "의료산업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산업화 수준이 미흡해 의료서비스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