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의 강점은 곧 STX의 약점이 된다. 이런 특성은 그룹의 성장 스토리와 사업구조,재무구조 등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STX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인수 · 합병(M&A)을 통한 지난 10년간 성장의 기록을 봐도 그렇고,166만평에 달하는 중국 다롄 사업장을 최근 둘러본 소감도 그렇다.

◆압축성장 신화 vs 리스크 관리능력

2000년 12월 한누리컨소시엄이 쌍용중공업(현 STX엔진)의 지분 34.5%를 163억원에 인수한 것이 STX그룹의 출발이었다. 이 회사를 쌍용양회로부터 인수할 당시 자산 규모 4400억원에 불과했던 그룹이 수차례 M&A와 투자를 통해 올해 2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국내 19위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 그대로다.

STX그룹의 성장 노하우는 M&A에서 '치고 빠지기'였다. 즉 싼 가격에 인수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과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가 그랬다. 2001년 대동조선을 인수할 당시 지분 97.7%를 1000억원에 사들였는데,IPO 때 30%를 상장해 거둬들인 자금만 1810억원이었다. 2004년 11월에는 범양상선 지분 67%를 4152억원에 인수해 3년 뒤 싱가포르 상장으로 회수한 돈만 4000억원이니 '잘 사고 잘 회수한' 한국의 대표 그룹으로 인정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재무적 투자자(FI)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점과,저렴한 가격으로 지분의 대부분을 인수했다는 점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한 데에는 산업 흐름을 읽는 강덕수 회장의 눈과 끊임없는 M&A 물건 탐색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7년 아커야즈(현 STX유럽) 지분 100%를 1조5615억원에 인수하면서다. 2008년 말 프랑스 조선소를 4000억원에 매각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해운과 조선업 경기가 악화되면서 나머지 지분 회수가 지연된 것이다. 중국다롄조선집단에도 2조원이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안정적으로 순이익 창출이 가능한 2012년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부담이다. 단기간 급성장으로 시장에 위험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한우물 파기 vs 계란 나눠담기

사업구조 면에서 STX그룹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았다는 점'이다. 해운 · 조선 · 선박엔진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업황 부진 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문어발식 확장보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세계화함으로써 최단기간에 해당 분야에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세계 1위 기업과의 기술격차를 얼마나 좁혔는가와 업황 회복이 수주에서 얼마나 확인되고 있는가다. 다행히 STX팬오션이 브라질 발레사와 맺은 철광석 장기운송계약이 조선 수주로 이어지고,최근 경기침체기 과도한 재고조정의 반사효과와 탄소배출권 문제 등의 이유로 선대 확장에 나선 선사들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위협요인을 강점으로 잘 승화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또 만족스러운 다롄법인의 정상화 속도와 선박용 엔진에 대해 보호무역정책을 쓰는 중국에서 '중국기업'으로 인정받는 것은 고무적인 소식이다.

재무구조와 관련해 STX가 자주 지적받는 것은 업황이 좋을 때 받은 선수금으로 과도하게 기업 확장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비판은 특히 조선해양에 집중된다. 배를 지으라고 준 선수금은 부채이므로 언젠가 원가로 투입돼야 한다.

관건은 신규 수주와 유럽법인 및 다롄법인의 IPO다. 작년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안 돼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시장 비관론자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STX조선에는 STX팬오션이라는 우량한 자산이 있다는 점이다. 작년 9월과 올해 5월 STX가 조선해양이 보유한 STX팬오션 지분 32.4% 중 25.4%를 5858억원에 매입해 줌에 따라 자금 갈증이 가장 심했던 조선해양에 큰 도움이 됐다. 또 STX팬오션은 2008년 말 부채비율이 61%로,250% 안팎이던 경쟁사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덕분에 선대 확장이 용이했다. 선가가 싼 지난해와 올해 발주를 넣는 것은 계열사 밀어주기와 선대 확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역할을 했다.

작년 9월에는 STX팬오션이 발레사와 대규모 철광석 장기운용계약을 맺음으로써 STX조선해양의 초대형 광물운반선(VLOC) 8척 발주로 이어졌다. 전략 · 영업 · 재무로 이어지는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결과다.

2007년 이후 STX가 위기를 거치며 얻은 교훈은 업황 전망과 자금회수 계획이 생각과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긴 호흡으로 볼 때 현재 사업분야에서도 큰 성장의 기회가 있다. 이제는 성장 후 회수보다는 회수 후 성장을,성장성보다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먼저 고민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