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 두 나라 간에 무역은 물론 문화까지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지만 유독 자본시장만큼은 예외다. 일본 증권회사 중에는 노무라와 다이와만 한국에 진출해 있다. 일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주식이나 채권은 관심권 밖이다. 외국인의 한국 채권 보유규모가 사상 처음 70조원을 넘어섰고 역외펀드인 코리아주식형펀드에도 올해 5000억원을 넘는 자금이 들어온 것에 비춰 의외다.

기요타 아키라(淸田 瞭 · 65) 다이와증권그룹 회장은 지난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일본인들은 한국 금융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한 · 일 간 자본시장의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 일본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주식과 채권,금융상품을 소개하고 서울지점은 법인으로 전환,채권중개 투자은행(IB) 등의 사업을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이와가 지난해 발표한 '2013년 아시아 톱10' 진입을 위한 경영전략의 일환이다.

일본 내 2위 증권회사인 다이와증권그룹(3월 말 결산)은 지난해 434억엔(약 529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으며 3월 말 기준 자기자본 규모는 1조175억엔(12조3900억원)으로 국내 최대인 대우증권(2조8550억원)의 네 배에 이른다.

▼1년 반 만에 한국을 찾았는데,이번 방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난달 본사 고문으로 영입한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를 만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비즈니스 전략과 IB업무 확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금융업계에서 폭넓은 경험과 뛰어난 업적이 있는 김 고문의 영입으로 아시아 사업이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을 비롯해 한국 금융계의 주요 인사들을 잇달아 만나 최근 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얘기하고 금융당국자들과는 한국 사업 확대를 위한 협조를 구했습니다. "

▼한국 내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아시아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 사업을 크게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한국 채권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 국채에 대한 프라이머리 딜러 자격을 취득하려고 합니다. 서울지점의 법인화도 추진 중입니다. 조만간 감독당국에 법인설립 인가를 신청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주식중개(브로커리지) 위주의 영업을 하고 있는데,채권과 IB 업무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아는데,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7월 말 도쿄에서 만났습니다. 단기간에 놀라울 만큼 급성장했으며 이머징 마켓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미래 측에서 만남을 요청해 왔습니다. 양 그룹 간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사업에 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현재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유력 금융그룹과도 협력을 확대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검토 중이지만 반드시 실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

▼일본 투자자들의 한국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한국 주식이나 채권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생명보험회사나 연기금이 한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지수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정도만 편입하는 수준입니다. 개인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은 여전히 생소합니다. 한류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지만,금융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릅니다. 일본 개인의 한국투자가 별로 없는 건 잘 몰라서일 겁니다. 다이와는 일본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하는 데 '통로'를 제공하고 '안내자'가 되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한국 금융상품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다만 투자자들에게 하나둘씩 좋은 상품을 소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일본 투자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분야를 새롭게 개척해 간다는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

▼일본 투자자들은 어디에 주로 관심을 갖고 투자합니까.

"일본 개인투자자는 지난 10여년간 일본 경제가 침체된 상태였던 데다 제로금리 상황에서 예금이나 저축의 수익률은 낮아 좋은 투자수단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강합니다. 투자자들은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통화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인도 브라질 중국 등 이머징 마켓 주식에도 많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엔화 가치가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지금은 일본 투자자들에게 해외투자의 최적기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이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면 일본 자금이 한국 투자를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MSCI선진국지수 편입이 일본 기관이나 개인의 관심을 높여 어느 정도 투자확대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미 이머징마켓지수에 있다가 승격이 되는 것이라 효과는 제한적일 것입니다. 관건은 얼마나 한국 자본시장을 잘 알리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

▼일본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일본 경제에 있어 엔고가 주된 위협 요인이라는 데는 시장참여자들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이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하고 정부도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집권 민주당 내 계파 간 이견으로 의사결정이 늦어지면서 시기를 놓쳤다고 봅니다. 시장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하면서 실망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그룹 내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일본의 올 경제성장률을 2.9%에서 1.8%로,내년은 2.4%에서 1.5%로 각각 하향 조정했습니다. 엔고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가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일본 경제는 언제쯤 침체 터널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수 있을까요.

"일본 기업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원가절감과 투자 억제를 통해 성장과 수익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출비중이 높아 해외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엔고는 물론 부정적 요인이고요. BRICs(브라질 · 러시아 · 인도 · 중국) 국가들이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미국 경제가 살아나야 합니다. 미국 경기가 더블딥(경기 일시회복 후 재침체)으로 가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본격 회복에는 적어도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 역시 내년까진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며,2012년에나 회복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 겁니다. "

▼3년 전 한국에서 일본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평균 50% 정도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큰 손실이 불가피했을 겁니다. 그나마 주식투자에서의 손실을 환(換)을 통해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에 투자할 때는 환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엔 · 달러 환율이 추가적으로 떨어질 여지는 있지만 달러당 70엔대나 그 이하로 추락하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 현 상황에서 원화를 팔아 비싼 엔화자산에 투자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 될 수 있습니다. "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매우 높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포스코도 한때 '철강의 스승' 기업인 신일본제철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을 기반으로 한국 경제는 선진국형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높은 성장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지 않고 있다는 건 매우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반면 주식시장은 아직까지 이머징마켓에 속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증시는 상당히 저평가돼 있지만,점차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

▼한 · 일 간 자본시장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입니까.

"우선적으로 원화의 국제화를 도모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국은 세계 10대 무역국가이면서도 수출대금의 원화 결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통화의 국제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 기요타 회장은

기요타 아키라 다이와증권그룹 회장은 이 회사에서만 41년간 몸담아왔다. 채권운용부장을 맡은 1989~1993년 다이와를 채권 인수부문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일본 최고의 채권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그룹 지주회사인 다이와증권그룹 사장에 선임돼 그룹의 중 · 장기 경영발전계획을 수립했고 2004년에는 부회장이자 그룹 싱크탱크인 다이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그가 회장에 오른 2008년부터 다이와증권그룹은 예전 '채권 명가'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다이와증권SB캐피털마켓은 2008년 금융전문주간지 IFR(International Financing Review)지 선정 '올해의 본드 하우스'상과 파이낸스 아시아 선정 '베스트 채권하우스'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작년엔 유로머니로부터 베스트 사무라이본드 딜러, 베스트 채권딜러로 선정됐다.

기요타 회장은 취임 첫해에 베트남 투자를 선언하는 등 아시아시장 공략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주요 약력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졸업(1969년) △다이와증권 입사(1969년) △채권 및 채권운용부 부장(1989년) △채권&금융사업부 본부장(1996년) △다이와증권SB캐피털마켓 사장(1999년) △다이와증권그룹 사장(2000년) △다이와증권그룹 부회장(2004년) △다이와증권그룹 회장(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