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직은 리더십 갖춰야 할 자리
높은 윤리기준 맞춰야 신뢰 얻어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을 비롯해 잭 웰치 전 GE 회장 등 출중한 CEO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업경영에서 인사가 단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총리와 장관 후보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면 국가경영에서도 합리적 인사관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청문회 파행의 원인은 정치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무엇보다 합리적 인사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경시한 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과 정부조직을 막론하고 합리적 인사관리의 제1 원칙은 적재적소,즉 각 직책에 가장 적합한 자질을 갖춘 인재를 기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상식인 것 같은 적재적소 원칙은 실제 인사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며,기업이나 정부의 인사권자들 중 이 기본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우리 사회 각계 리더들의 인사 의사결정을 보면 능력주의,성과주의,글로벌 역량,세대교체 등 최신 트렌드에는 민감한 반면,적재적소라는 인사의 펀더멘털에는 약한 것 같다.

적재적소 관점은 일반적 상식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이전에는 유사한 결함이 있어도 청문회를 통과했는데 유독 이번 후보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 같다는 식의 동정론이 있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적재적소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항상 같은 잣대나 기준을 적용하는 일관성의 원칙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또 정치권에서 흔히 '패거리 인사'라고 비난받는 자기 사람 중심의 인사는 항상 나쁜 것일까? 적재적소 관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직책마다 필요한 자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인사의 절대적 기준으로 간주되는 전문 지식과 역량은 수많은 자질들 중 하나일 뿐이다. 적재적소 인사 관리는 어떤 직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역량은 물론 리더십,팀워크,충성심,창의력,협상력 등 자질은 다양하며,이들 자질 간의 상대적 중요성 역시 직책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직책마다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특정 기준만 고집하는 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경직성이다.

적재적소 인사는 각 직책에 요구되는 역할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후보자 평가에서 각 직책마다 각기 다른 자질평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예를 들면 혼자서 고난도의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전문직의 경우 핵심 자질은 지식과 역량이며 팀워크나 리더십 등의 다른 자질은 상대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멀어진다. 또 인사권자의 분신처럼 측근에서 밀착 보좌해야 하는 비서진이나 보좌관의 경우 당연히 인사권자와의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적 충성심을 가진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적재적소 인사이다.

이번 청문회 대상이 된 인사에서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 최고위급 인사에 전문 행정역량,글로벌 세대교체 트렌드,인사권자와의 팀워크 등을 핵심 기준으로 적용한 것 같다. 그런데 총리 직책은 특정 영역에 대한 전문가나 대통령에 대한 측근 보좌가 아니라,전체 정부조직과 국가를 이끌고 나가는 리더십이 그 핵심이다.

리더십은 팔로어들의 신뢰에서 나오므로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정부조직의 모든 구성원들과 전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고,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윤리적 이슈들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 것은 당연하다. 전문직이나 대통령 보좌관 인사였다면 이런 윤리적 요소들이 그리 부각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각기 다른 직책의 본질에 따라 후보 평가의 다양한 기준들 간의 상대적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적재적소 인사의 펀더멘털이다.

신동엽 < 연세대 경영학 교수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