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한다는 핑계로 남편 밥상 차리는 게 일주일에 고작 두세 번이다. 마늘,청양고추,된장만 빠트리지 않으면 한마디 불평도 없는데 말이다. 평일 애들 아빠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저녁을 먹고 일을 해도 될 법한데 중간에 흐름이 끊어지면 곤란한지 7년째 그렇게 지낸다. 얼마 전 밥상 앞에서 모두가 눈물지었던 일이 생겼다.

근무지가 가까운 터라 야근하는 날은 남편과 함께 귀가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후 10시쯤이었다. 손만 씻고 밥상을 후다닥 차리는데 반찬이 약소하다. '배가 고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으니 위가 쪼그라들어 물 한 모금 넘기고도 체할까 조심스럽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천천히 한 술 뜨는 남편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체크했다.

퇴근해 집에 오면 으레 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 이름을 여러 차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식탁에 가보니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TV 보는 중,게임 중,문자 하는 중이라는 말들이 돌아온다. 순간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전원 집합'을 외친다.

세 아이와 함께 남편 밥상 앞에 불려 앉았다. '갑자기 왜 저러실까' 아이들의 얼굴빛도 굳어졌다. 하던 일을 멈추고 왔으니 아이들은 딴 생각이다. 남편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왜 불렀겠느냐고 묻는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혼자서 저녁 먹는 게 싫다"는 남편의 말에 아이들은 대뜸 "우리도 혼자 먹을 때가 많다"고 바로 말을 받는다. 학원 시간도 다르고 집에 귀가하는 시간이 각기 다르니 세 아이 모두 저녁 먹는 시간이 제각각이다.

밥상만 차리고 자기 볼일 보고,아이들은 현관 인사만 하고 사라졌으니 남편 입장에서 여간 서운했던가 보다. 엄마에게는 재잘거리고 요구하기 바쁜데 남편에게는 이런 요구사항도 별로 없다 보니 혼자만 덩그러니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온 종일 가족을 위해 일하고 왔는데 서러울 만도 하다.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고,집에 들어오는 순간 세상이 평화로운데 갑자기 고독이 밀려온다고 말한다. 가족들 속에서 밥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막상 집에 오면 혼자 먹게 되는 것이 태반이라 어떨 때는 밖에서 먹고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남편의 이야기가 계속되자,막내가 흐느낀다. 둘째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만다.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몰랐어요. 죄송해요. 아빠,이것 좀 드셔보세요. 제가 만든 달걀부침 짱 맛있어요. " 무뚝뚝하던 애들 표정이 촉촉이 젖어들고 애교스럽게 아빠를 달래자 남편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필자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예의 없는 아이들을 만든 것은 아닌지 미안해서 혼났다. 그때 약속했다. 아이 아빠 저녁 먹는 시간에 가족이 모두 모여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로.남편의 밥상이 외롭지 않게.여보,미안해요.

최선미 < 한국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