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영업] 재취업길 막힌 퇴직자 창업에 몰려
정부가 서민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자영업자 지원 정책이다. 그러나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계선상에 놓인 자영업자들을 지원하기 전에 시장의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퇴직자들이 자영업자로 대거 전환되면서 과당경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자영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동유연화로 퇴직자 재취업 늘려야

한국의 자영업은 이미 포화 상태다. 2008년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이 31.3%로 주요 선진국의 3~4배에 달한다. 미국은 7.4%,일본은 10.2%,독일은 11.2%밖에 안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도 15.8%로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대비 음식점 수는 미국의 6.8배나 된다. 숙박업소는 4.4배,소매업체는 3.9배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해 임금근로자들이 퇴직 후 대거 자영업으로 몰리는 것이 과당 경쟁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퇴직 후 다른 직장에 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해 너나 할 것 없이 퇴직금 등을 털어 자영업에 뛰어들고 이로 인해 과당경쟁이 빚어져 업종 전체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자영업자를 지원하기에 앞서 퇴직자들이 전문성을 살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지원 등 일시적인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보다 자영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자금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해 금세 경영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지역 상공회의소나 소상공인지원센터를 통해 전문 컨설턴트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경영난으로 폐업할 경우에는 유망한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영업자들은 저숙련,저소득,저희망의 3저(低) 문제를 안고 있다"며 "숙련도를 높여 소득을 늘리고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 효과 미미

자영업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다. 정부는 4월 영세 자영업자들의 카드 수수료율을 대형마트와 비슷한 2~2.5%로 낮췄다. 그러나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수수료율 인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수수료율 인하 대상이 연매출 9600만원 미만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인하 대상 자영업자들도 수수료 인하폭이 0.4~1%포인트에 그쳐 수익성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김경배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가맹점당 수수료 절감액은 월 4만~5만원에 그친다"며 "이 정도로는 침체된 자영업 경기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미소금융재단 출범과 함께 본격화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사업도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영세 자영업자들의 자금난을 해소해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미소금융재단은 지난 16일까지 1524명에게 122억5000만원을 창업자금이나 운영자금 용도로 빌려줬다. 미소금융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은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출 원리금도 갚고 있지만 전체 자영업자 수에 비하면 미소금융의 지원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들도 연 10%대 금리의 저신용자 대출을 늘려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는 사람들이 곧장 연 30~40%대의 대부업이나 사채시장으로 넘어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