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안 국회서 부결…소모적인 정쟁으로 국론분열만 초래
[Focus]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세종시… "포퓰리즘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기업·과학도시를 건설하는 내용의 ‘세종시 수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국회 재적의원 291명 가운데 275명이 참석한 표결에서 수정안 찬성은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이었다.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의석(168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과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표결로 길게 보면 2002년, 짧게 보면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세종시 논란이 종결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긴 상처는 컸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를 놓고 정치권을 포함해 한국사회 전체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 표결 과정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세종시 문제의 본질은 뒤로 하고 소모적인 정쟁(政爭)으로 얼룩져 국론분열이 심각했다고 평가했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일로 국민들에게 국가 정책이 당리당략과 정파 갈등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정부와 정책의 신뢰 저하라는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유치하고 원전도 수주하는데 정치가 곪아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세종시 추진의 배경과 경과,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살펴보자.

⊙ 세종시 정략적으로 활용한 정권


세종시는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에서 비롯됐다.

이듬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때 이 주제로 재미 좀 봤다”고 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파장은 컸다.

대선 당시 영·호남으로 양분된 지역구도상 정치적 승부수로 ‘충청권 표심’에 기댄 속내를 은연중 드러낸 것이었다.

비록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중심주의’ 구도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들어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한 것이었지만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었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그 해에 관련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반대하지 않았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충청표를 노리는 노 대통령의 수에 당해선 안된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과 표를 넘겨줄 수 없다는 ‘기회주의’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고 정치적 논리로 세종시 원안이 탄생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세종시 반대론자였던 그는 2008년 대선일이 다가오자 “원안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년뒤 “선거일이 가까워지니까 자꾸 말이 바뀌더라.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 이후 2009년 9월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가 취임을 앞두고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세종시 ‘원안 대(對) 수정안’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 원안 vs 수정안


세종시의 원안인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은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일대 297㎢(예정지역 73㎢, 주변지역 224㎢)를 국고 8조5000억원 등 22조5000억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행정 중심의 복합기능을 갖춘 자족도시로 건설하는 것이다.

핵심은 수도권에 있는 중앙부처를 옮기는 것이다.

당초 청와대와 전 부처 이전이었지만 수도 이전 위헌 판결로 청와대와 외교통상부·통일부·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등은 이전 대상에서 빠져 이전 대상 기관은 9부2처2청에 36개이다.

원안은 중앙부처가 이전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지역 개발이 탄력을 받고, 기업 등 다른 기관도 들어와 세종시가 충청권의 중심도시로 활성화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이를 위해 원안은 주택 20만가구에 인구 50만명을 상정해 놓았다. 물론 행정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교와 연구소, 박물관·공연장, 방송국, 30만평 규모의 산업단지 등 자족기능도 들어 있다.

그러나 원안에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당시 원안 수립에 참여했던 전문가도 “인구 50만명이란 그림만 그렸지 구체적인 안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부처 이전이 가져올 수도분할의 부작용, 행정 비효율 등을 감안해 원안에서 부족한 자족기능이 대폭 확보된 수정안을 장고 끝에 내놓았다.

지난 1월 11일 정 총리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은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 건설을 주내용으로 과학비즈니스벨트, 기업·대학·연구소 유치 등을 담았다.

전문가들은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행정부처 이전을 제외한 자족도시 기능 확충을 꼽았다.

국토해양부 기업복합도시과에 따르면 애초 원안에는 기업·연구소·대학·병원 등 1차 인구유발 효과를 가져올 단체가 입주할 자족용지 비율이 6.7%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정안에는 자족용지 비율이 20% 넘게 책정돼 예상 인구도 3배 가까이 늘렸다.

또 수정안은 더 많은 기업 유치를 위해 원형지 공급 방식으로 땅값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물론 세종시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모두 일정 가치를 대표하고 있다.

도시를 키우는게 경제인지 행정인지가 대표적인 예다.

충청권은 원안을 지지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수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다.

어느 일방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논란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그러나 원안과 수정안으로 갈려 치열하게 싸웠다. 선택이 아닌 선과 악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계파’를 내세운 세력 다툼도 서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합의점이나 절충안 마련에 실패한 건 결국 우리만 옳다는 집단 이기주의 사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세종시가 남긴 교훈


세종시가 완공되는 건 2030년이다.

차차기 대통령도 은퇴한 뒤다.

그래서 미래세대를 염두에 둔 비전(vision)과 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각자의 입장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았다. 미래세대를 위한 진정한 비전을 가다듬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권이 포퓰리즘으로 정책을 이용하려할 때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로 인한 폐해가 극심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현대사에서 포퓰리즘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의 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세계 부자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성급한 가입 및 외환 자본시장 대거 개방, 과도한 원화 강세 유지 등은 결국 아시아 외환위기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IMF(국제통화기금) 신세를 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김대중 정부 때도 또 다시 농어업인부채경감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세종시 수도이전을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정부는 소득불균형 시정, 분배정책을 유달리 강조했다.

그러나 2인 이상 도시가구 가처분 소득기준 5분위 배율은 2002년 4.50에서 2007년 5.08로 더 악화됐을 뿐이다.

그 당시 대통령들은 모두가 그럴듯한 화려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다분히 포퓰리즘적이었고 국가 백년대계의 눈으로 재조명해보면 너무 성급했던 일들이 많았다.

문제는 포퓰리즘의 폐해는 당대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 다음 수대에 이르도록 두고 두고 고통을 주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세종시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논리에 국가 정책이 표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준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