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시장혼란 부추긴 구조조정 발표
"작년처럼 명단을 공개했어야 합니다. 발표 전 시장에서 한참 소문이 돌았는데 정작 업체명이 나오지 않으니 해명할 기회조차 없잖습니까. 도대체 누굴 위한 건지 모르겠네요. "(소문만 돌다가 구조조정 명단에서 제외된 모 건설사 관계자)

지난 주말 우리은행 등 채권은행단은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토대로 부실 건설사 등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정작 알맹이인 회사 이름을 뺐다. "작년에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공개했더니 수주 중단 등 부작용이 커 업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시장에서는 채권은행단의 기대와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발표 두어 시간 만에 은행 관계자들과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채권시장 등을 통해 회사 이름이 하나둘씩 알려진 것이다. 익명보장이 사실상 제대로 안 된 셈이다.

회사명이 널리 알려졌는데도 채권은행단이 명단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 않아 애꿎은 회사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구조조정 명단에 이름이 오른 제일건설 대선건설 중앙건설과 똑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회사들이다. 풍경채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알려진 제일건설은 이번 구조조정 명단과는 상관이 없지만 공식 발표가 없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전국에 3개나 되는 대선건설과 시공능력평가 300위권에 2개의 이름이 있는 중앙건설도 마찬가지다. 금광주택은 퇴출 대상으로 확인된 금광건업 금광기업과는 다른 회사라고 언론사마다 일일이 해명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동안 소문에 오르내렸던 회사들도 불만이다. 한 해당 건설사 사장은 "시장에 나돈 '리스트'에 오르내리면서 자금줄이 끊기고 하청업체들이 회사는 물론 집까지 찾아와 업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에 따른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질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건설사들은 불확실성을 줄이려다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더 키운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 건설사 재무팀 관계자는 "실명이 들어 있지 않은 이번 구조조정 대상 발표는 은행단의 횡포"라며 "자신들이 발표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는 꼼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성토했다.

김재후 건설부동산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