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이 끌어올린 투표율 씁쓸
디지털에 걸맞은 문화 키울 때
[다산칼럼] 고무신과 막걸리 그리고 트위터 인증

지난 6 · 2 지방선거는 전국 투표율 54.5%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 밖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데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그 중에서도 특별히 20,30대 유권자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트위터 인증' 열기가 한 몫 했으리란 분석에 슬그머니 눈길이 간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직접 투표에 참여했음을 인증할 수 있는 사진 기록을 보내면,생맥주를 무료로 제공한다거나 추첨해 각종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가 곳곳에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는 보도가 방송을 탔다. 미술가 임옥상씨는 TV 뉴스 인터뷰에서 "트위터 인증을 보내오는 사람 가운데 1000명을 추첨해 자신의 작품을 선물하겠노라는 메시지를 띄우자 2000명 이상의 팔로어가 답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정치적 무관심 내지 탈(脫)정치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세대를 겨냥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아이디어로는 신선하다 할 수 있겠으나,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씁쓰레한 느낌이 우러나옴을 부인하긴 어려웠다. 지나온 격동과 격변의 현대사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의 의미가 투표장을 찾은 신세대의 마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궁금해온 때문이다.

대학원 시절,유럽의 근대사 속에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투옥을 불사하고 항쟁했는지,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사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생생한 기록을 접하곤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네 경우는 어떠했던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어느 날 갑자기 참정권이 모든 국민에게 '주어졌다'.1948년 당시 남한 인구 총 2016만여 명 가운데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약 17.1%에 불과했다. 전형적인 농촌사회로 문맹률이 80~90%에 이르렀던 상황에서 투표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론 막걸리를 대접하고,고무신을 선물로 안길밖에 별다른 수가 없었을 게다.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대변되던 소박한 민심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 및 도시화와 더불어 선거철의 선심성 관광에 '돈 봉투'로 진화했고,그 결과 정치 지망생들은 돈잔치를 하지 않으면 당선권에 진입하기 어려운 악습을 낳았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돈선거 근절을 표방한 엄격한 선거법이 통과됨으로써 선거 부정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곤 하지만,예전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못내 그리워하는 여진이 남아 있음은 물론일 게다. 막걸리 한 잔 걸치러 투표장에 가는 마음이나 트위터 인증 덕분에 공짜 생맥주 한 잔 마시러 투표장에 가는 걸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은 지나친 기우일까?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디지털 기술을 멋지게 활용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 할 참여정신과 절묘하게 연계함으로써,명실공히 디지털 데모크라시 시대를 연 신세대의 저력이 숨어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우리도 이제 디지털 세대의 잠재력을 성숙한 시민문화로 승화시켜갈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트위터 인증에 색다른 재미와 남다른 흥미를 느끼는 신세대를 향해,수단과 목적이 뒤바뀔 때 그 결과는 참담할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할 것이다. 대신 '대의민주주의'의 참뜻을 이해시키고,신성한 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숙지시키는 동시에,나아가 디지털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저력이 신세대 당신들에게 있음을 공감케 하는 것이 과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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