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전 세계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살 수 있는 재화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넘쳐났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초과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생산을 늘리는 쪽에 초점을 맞춰 세율을 낮췄고,강(强)달러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더 많은 재화가 생산됐고,달러의 수급에 보다 균형이 잡히게 됐다.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지 18개월 만에 문제들은 해결됐고,물가상승률은 이후 20년 동안 완만하게 하락했다.

미국은 지금 과도한 정부지출과 빚이라는 레이건 당시와 다르지만,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문제는 일자리 증가와 금융시장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대형 채무자들을 위해 초(超)저금리를 유지하고(정부는 예금자들을 희생시켜 수십억달러를 아끼고 있다) 정부지출을 늘리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세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효과가 없다. 오히려 소기업의 자본을 급격히 줄게 만들고,고용을 위축시킨다. 결과적으로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난다.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예산안대로라면 정부지출이 올해는 3조6000억달러,2020년엔 5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8년 정부지출은 3조달러였다.

이처럼 나랏돈을 펑펑 쓰는 바람에 2020년까지 미국 국채 발행잔액은 20조달러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8조4000억달러)의 2.5배,국내총생산(GDP)의 90%에 이르는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부채가 이보다 더 크게 늘어나 2020년까지 GDP의 107%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전망치는 이미 위험한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각종 재원이 마련되지 않은 복지 프로그램과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국책 모기지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관련 국민부담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실상 미국은 그랜드 캐니언 만한 크기의 부채구덩이에 빠져 있는데,현재의 '경제적 상식'은 더 많은 경기부양책으로 구덩이를 더 깊게 파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전지출(transfer payment)은 이미 개인소득의 18%를 넘어섰다. 수조달러의 소득이 경제의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서 덜 생산적인 부문으로 옮겨간 것이다.

민간분야에 대한 압박에 더해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물량의 규제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복잡하고 로비가 판치는 밀실논의를 활용하고 있다. 의료보험 개혁법은 2700쪽에 달하며,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금융개혁법안도 2000쪽 가까이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또 올해 말 수백쪽에 달하는 세법을 통과시키면서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덜어준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감세혜택이 끝남에 따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내년에 올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세금 인상을 허용하는 미국 의회의 논리는 미국의 성장과 투자가 세율에 별로 민감하지 않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상 세금을 올리면 민간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다 효과적인 접근법은 민간투자 확대를 위해 정부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은 정부지출 축소보다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나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선호하고 있다. 심지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그리스에서도 세금과 정부지출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스의 총부채는 올해 3790억달러에서 2015년 436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시장이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실망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의 일부를 현금화할 수는 있겠지만,그리스는 IMF와 유로존 국가들에 더 많은 빚을 진 상태가 된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성장전망 변화에 빠르게 반응한다. 이는 양날의 칼이다. 건설적인 변화가 진행 중일 땐 즉각적인 보상이 이뤄진다. 주식과 채권값이 오르면 자본비용은 감소하고 보다 많은 일자리와 수익,세금 납부로 이어진다. 그러나 성장여건이 훼손될 땐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금융시장이 계속 약세를 보이면 자본비용은 증가하고 일자리는 줄어든다.

미국과 일본,유럽은 이런 모멘텀에 의한 피드백의 건설적인 면을 활용해야 한다. 자본을 놓고 벌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과 유럽은 아시아와 다른 신흥국가들에 밀리고 있다. 지금 전 세계 금융시장이 국가부채와 정부지출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도,미국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정부지출과 부채를 늘리고 있다.

각국 정부가 하루 아침에 과잉지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은 건설적인 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만약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의 지도자들이 단순히 위원회를 만들거나 법규를 제정하는 게 아니라 의미있는 정부지출 감축이나 증가속도 둔화를 위한 믿을 만한 과정을 발표한다면 시장은 이를 환영할 것이다. 또한 공공의 찬사를 받으면 보다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볼 수 있듯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가엔 투자자본 풀(pool)이 무제한이다. 기업과 은행의 현금,꽉 들어찬 머니마켓 펀드,인플레이션 헤지용 금(金)이나 원유 상장지수펀드(ETF) 등 막대한 자본이 활용되지 못하고 쌓여있다. 이들 자본은 실질 세후이익 전망만 개선되면 쉽게 일자리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거의 10%에 육박하고 있고,미국 행정부는 여전히 소기업들의 자본을 고갈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실질적인 성장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글로벌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자본이 양호한 세후 수익을 제공하는 나라로 흘러들어가는 다이내믹한 과정이다. 이는 국가나 기업을 서로 겨루게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레이건이 이해했듯이 진정한 리더십은 명시된 목표와 결단력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지금은 민간분야가 다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지출을 충분히 줄여야 할 때다.

데이비드 멀페스 엔시마 글로벌 대표(전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

The Wall Street Journal 한경 제휴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