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재미교포 프로골퍼 위성미 선수가 LPGA 투어 도중 실격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라운딩 후 각 선수들은 동반 선수가 기록한 스코어카드를 확인하고 여기에 서명한 후 내야 하는데,이를 깜빡 잊고 지나쳤다가 뒤늦게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로 실격당한 골퍼들이 종종 있다고 하니,골프 룰은 프로선수들에게도 복잡한 모양이다.
위의 일은 프로대회에서 일어난 해프닝이지만,아마추어끼리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우리나라 골퍼들 중 룰을 제대로 숙지하고 게임을 즐기는 골퍼가 얼마나 될까? 필자가 아는 싱글 골퍼들 중에도 '노란 말뚝(워터해저드)'과 '빨간 말뚝(병행워터해저드)'의 차이를 제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마추어 골퍼들은 라운딩 중 룰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러 국가의 골프장들을 다녀 보면 천태만상의 풍경이 보이곤 한다. 후진국의 골프장은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아도 대체로 질서가 없고 어수선하다. 반면 선진국의 골프장은 많은 인력 없이도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골퍼들 스스로 골프장을 소중히 하고 정리정돈도 잘 하며 룰도 잘 지킨다.

골프는 룰과 에티켓의 운동이라고 한다. 목동들의 운동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골프는 심판이 없는 상황에서도 룰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플레이하면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룰은 비단 골프에서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동남아 어느 나라의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얘기다. 30여년의 독재정권 아래 대통령의 친인척이 모든 이권을 차지하고 부정을 일삼다 보니,전 국민 사이에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하다못해 공무원에게 돈을 갖다주면 영수증까지 써주었으니….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아직 룰을 지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신문지상에는 각계 각층에서 벌어진 부정부패 소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부패지수(CPI)에서 한국은 39위에 올랐다. 경제 규모에 비해 한참 떨어진,정말 부끄러운 순위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 내부에서도 부정부패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내부 감사에서 적발돼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기업 내부의 기준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증좌다.

최근 그리스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휘청거린다. 이 위기의 큰 원인 중 하나가 그리스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일이다. 지금 한국은 선진국 진입의 갈림길에 서 있다. 도약할 것인가,추락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국가 경쟁력을 올리는 첩경은 '룰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닐까?

김홍창 CJ GLS 사장 01cjits@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