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리 위르티제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초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쌍용자동차 인수를 검토 중이냐는 질문에 "현 단계에선 아니다(not at the moment)"고 말했다. 추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르노삼성은 비슷한 시기 쌍용차 매각 주간사인 삼정KPMG로부터 인수 요청을 받고 내부적으로 인수 · 합병(M&A)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쌍용차 인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자는 데 이사진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르노그룹은 2003년 말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넘어가기 직전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경험이 있다. 쌍용차를 인수하기 위해 7년 만에 재도전하는 셈이다.


◆르노삼성,쌍용차 결합으로 풀 라인업

르노그룹이 쌍용차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르노삼성과 결합시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르노삼성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5를 갖고 있지만,주로 SM3 SM5 SM7 등 승용차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신차 역시 소형과 준대형 세단이다. SUV에 강점을 갖고 있는 쌍용차와 결합하면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국내외 시장 장악에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더구나 쌍용차는 르노삼성이 아직 진출하지 못한 대형 세단 시장에서도 체어맨으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르노삼성이 고심하고 있는 생산능력 확충 측면에서도 쌍용차만한 대안이 없다. 르노삼성이 연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은 최대 24만대 수준.2교대를 3교대 체제로 바꿔도 연간 30만대가 한계다. 르노삼성은 작년 불황기 때 19만여대를 생산했으며,올 1~4월 9만여대를 만들었다. 뉴 SM3와 뉴 SM5 등의 판매가 급증세여서 공장을 증설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고 있다.

반면 연 26만대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쌍용차는 작년에 단 3만5000여대만을 생산했다. 얼마든지 물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힌드라 · 영안모자 등 7개사 각축

28일 마감한 쌍용차 입찰에는 르노그룹을 비롯 마힌드라그룹과 사모펀드 서울인베스트,영안모자 등이 인수의향서를 접수했다. 이 중에선 르노그룹이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로 꼽힌다. 충분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전략적 투자자인 데다 쌍용차 인수에 따른 시너지도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르노삼성이 노사 문제로 한번도 시끄러웠던 적이 없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이유일 쌍용차 법정관리인은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자동차 제조업체를 선호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문제는 인수 가격이다. 이번 M&A는 쌍용차가 구주와 똑같은 물량(총 3612만주)을 발행,새 주인에게 제3자 배정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이날 쌍용차 주가는 전날보다 12.95% 오른 1만2650원으로 마감돼 인수 희망자의 가격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신주 발행가격은 구주보다 높게 책정되는 게 관행이다.

업계가 추정하고 있는 쌍용차 매각대금은 4000억원 안팎이다. 주가가 계속 오를 경우 일부 인수 희망자들이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르노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다. 쌍용차가 작년만 해도 34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데다 올해 역시 적자가 예상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삼정KPMG와 맥쿼리증권은 인수 희망자에 대한 심사를 거쳐 다음 달 4일 입찰적격 대상자를 가려내기로 했다. 오는 7월20일 인수 희망가격을 포함한 최종 입찰제안서를 받은 뒤 8월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 완성차업계 3파전 재편 가능성

르노삼성이 쌍용차를 최종 인수할 경우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 · 기아자동차와 르노삼성-쌍용차 연합,GM대우자동차 간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국내 시장의 70~80%를 차지하며 사실상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 · 기아차를 르노삼성-쌍용차 연합이 견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쌍용차의 시장 점유율이 작년 말 기준 1.5% 수준에 불과하지만,한때 르노삼성 · GM대우와 함께 각축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양사 간 시너지가 클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GM대우 역시 올 하반기부터 연속으로 신차를 쏟아낼 계획이어서 연 140만~150만대 규모의 국내 시장을 놓고 '빅3' 간에 사활을 건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