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이 될 만한 차를 선보인다는 것, 모든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자 위대한 야망입니다."

29일 개막한 부산 국제모터쇼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K5'의 신차 발표회 현장.

짧은 머리에 알이 큰 뿔테안경을 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제나처럼 검은색 의상을 갖춰 입은 한 외국인 임원이 담담하게, 하지만 자신 있게 신차를 소개했다.

이 주인공의 이름은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CDO·57). '디자인 경영이 궤도에 올랐다'는 평을 자아낸 기아차 K시리즈의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스타 플레이어’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세계 3대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2006년 기아차에 합류한 것은 업계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로체 이노베이션', '쏘울' 등에서 한국 자동차업체로는 처음으로 '패밀리 룩(family look·한 업체가 출시하는 차종의 디자인을 유사하게 통일하는 것)'을 시도했다. '호랑이 코'를 연상케 하는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을 기아차 차종에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직선의 단순함'을 강조해 왔다.

기아차 특유의 이 같은 디자인 철학은 지난해 출시된 준대형세단 'K7'부터 ’스포티지R', 'K5'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왔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K5 신차발표회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아차의 특징과 향후 비전을 소개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한 눈에 기아차임을 알아볼 수 있는 큰 그림을 만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기도 좋고, 운전하기도 좋은 차를 만들어야 한다"며 "자동차 디자인은 표면뿐만 아니라 내면과 기술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아차의 로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아주 좋다"고 답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기아라는 이름은 아주 대단한 이름(super name)"이라며 "K, I, A 세 글자 알파벳으로 되어있어 인식하기도 좋다"고 강조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기아 로고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고 있는 걸까. 그는 "이름을 버리거나 다른 모양을 붙이는 건 옳지 않은 방식"이라면서 "다만 로고의 품질을 높이거나 크기를 바꾸는 건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에서 디자인을 지휘하다 기아차에서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과 관련, '기아차에서 성취감이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디자인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소속회사와 관계없이) 같다"면서도 "한국에서 한국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룬 성과 중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역시 기아차의 패밀리 룩을 정립한 것"이라고 슈라이어 부사장은 전했다. BMW나 알파로메오 등 역사가 오래된 업체는 특유의 모습과 정체성이 있지만, 대중화를 추구하는 일반 브랜드나 신생업체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출시되며 모터쇼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기아차의 야심작, K5에 대한 감회는 어떨까.

슈라이어 부사장은 "K5는 초기 디자인단계에서부터 확신을 가졌다"며 "이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 양산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체 비율도 만족스럽고, 곳곳의 정교함과 앞 유리창 윗부분에 패밀리룩을 적용하는 등 세심한 부분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이날 무대에 올라 K5를 소개하며 "기아차 디자인팀은 자동차 디자인계의 ‘챔피언스 리그(유럽 축구연맹이 주최하는 토너먼트 축구대회)’에 도전하고 있다"며 "K5는 이 도전을 성공시킬 차"라고 자신했다.

출신은 속이지 못하는 걸까. 유럽의 축구대회를 비유거리로 삼은 독일 출신의 슈라이어 부사장은 내년 출시 예정인 현대차 '에쿠스'급 4000cc 대형 세단 'K9(개발명)'을 통해 다시 한 번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부산=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