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뤄질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시스템 리스크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금융회사(SIFI · 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에 대한 규제 방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형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와 각국 정부의 대마불사(too-big-to-fail)정책에서 초래됐다는 판단에서다.

금융회사(SIFI)문제에 대한 대책은 오는 10월까지 마련될 전망이다. 건전성 규제와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위기 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형 회사를 해체하기 위한 '유언장(living will)'을 미리 작성토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적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볼커 룰(Volker rule)'은 이와 관련된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인 폴 볼커가 제시한 볼커룰의 핵심은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자금의 투자 용처를 제한하고,일정 시장 점유율을 넘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이나 지분 인수를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4일 미국 상원에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은행의 경우 고위험 고수익을 부추기는 주식 채권 외환 원자재 파생상품 등에 대한 직접 투자,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대한 소유나 투자 운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G20 회원국들은 볼커룰의 기본방향인 투자제한과 대형화 억제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 규제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유니버셜 뱅킹(종합금융)전통이 강한 유럽은 볼커룰보다는 위험거래에 따른 비용부담을 높이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어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미국 내에서도 볼커룰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간 의견조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볼커 룰에 대한 국제적 지지도는 높지 않다"며 "미국 정부도 이를 강요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우리정부는 볼커룰이 미국에서 도입되더라도 국내 은행들의 자기자본 투자나 사모 ·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 제한이 철저하고 은행과 증권 등 권역별 업무영역도 비교적 명확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우리나라는 금융업권별 법규 체계가 구축돼 있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가 많은 부분 분리돼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권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융회사의 규모나 시장점유율에 대한 제한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부채기준 시장점유율이 10%를 넘는 국내 금융회사는 은행 3개,생보사 3개,손보사 3개 등 총 10개사이며,10%에 육박하는 금융회사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회사의 추가적인 M&A나 지분인수를 제한하는 방안이 G20에서 채택될 경우 당장 우리금융 민영화와 외환은행 매각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될 확률은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스위스의 경우 크레디트스위스와 UBS의 시장지배력이 80% 이상"이라며 "스위스 정부 입장에서 두 회사를 쪼개라는 국제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도 볼커룰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강조해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한 세미나에서 "볼커 룰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며 "한국 금융은 글로벌 차원의 흐름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국내 금융권 동향은 규제강화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볼커룰'은 과잉 금융규제의 전형으로,국내 금융산업 정책 방향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태규 한경연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산업 규모는 아직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왜소하다"며 "겸업화를 통해 고객의 다양한 금융서비스 니즈(needs)를 충족할 수 있는 규모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