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지중해와 에게해(海)에 해상무역이 번성하며 해적들이 들끓었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해적에게 붙잡혔다 적잖은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해적들은 18세기 초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중심으로 황금시대를 맞는다. 검은 바탕에 흰 해골이 그려진 깃발을 앞세우고 약탈을 일삼았던 '검은 턱수염' 에드워드 티치,3년 동안 400여척의 배를 나포했다는 '검은 남작' 바르톨로뮤 로버츠 같은 전설적 해적들이 이 시대를 주름잡았다.

심지어 여자 해적도 있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라는 두 여자는 1720년 해적 활동을 한 죄로 재판을 받는 동안 많은 관심을 끌었다. 몇 년간 남자들과 함께 거친 생활을 했다는 데 흥분한 영국언론들은 '음탕하고 불경한 말과 욕설을 쏟아냈으며 못할 짓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고 기록했다. 보니와 리드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둘 다 임신중이어서 형 집행이 유예됐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해적생활은 낭만과 모험,방탕이 뒤섞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별로 낭만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 플로리다주 멜 피셔 해양박물관 큐레이터인 앵거스 컨스텀은 '해적의 역사'라는 책에서 해적들의 삶은 배신 난파 절망 질병 만행 등의 반복이었다고 썼다. 대부분 비열하고 잔인했으며 단명했다는 것이다. 럼주를 즐겨 마신 탓에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고 한다.

한국인 5명 등 24명이 탄 30만t급 원유 운반선 삼호드림호가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자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이 급파돼 구출에 나섰다. 소말리아에선 1991년 내전 이후 지속돼온 무정부상태와 극도의 빈곤 탓에 해적질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여러 통로로 수집한 정보를 취합해 목표선박을 정한 다음 쾌속정에 위성항법장치,로켓포,자동소총 등을 갖추고 공격한다. 해적들에게 돈,무기 등을 투자한 후 배당을 받는 시장까지 형성돼 있을 정도다.

더구나 해안선이 3000㎞에 달할 정도로 길다 보니 미국 EU 한국 등 다국적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소말리아 해역에선 47척,860여명의 선원이 납치됐다. 그런데도 이들을 처벌할 국제법조차 없다. 가뜩이나 천안함 사건으로 어수선한 터에 여론에 떠밀려 서둘지 말고,우선 안전하게 선원들을 구한 뒤 근본 대책을 세워나갈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