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특명'을 안고 부임했던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이 결국 관광길을 다시 열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통일부 차관 출신인 조 사장은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씨 총격 피살사건 직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윤만준 전 사장의 후임으로 현대아산 사장에 올랐다.

통일부 경력을 앞세워 북한은 물론 우리 당국 사이에서 '조정역할'을 하며 관광길을 여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남북간의 간극을 좁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작년 3월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가 체제비난 등 혐의로 억류되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조 사장은 유씨가 억류된 뒤 초기에 개성공단을 출퇴근하다시피하면서 석방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그해 8월 억류 137일만에 유씨를 데리고 귀환할 수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유씨 석방,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 등을 계기로 북측은 남측에 몇가지 '유화적 제안'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 관광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정부는 박왕자씨 사건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마련과 함께 방북자 신변안전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되지 않는 한 관광 재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여기에다 작년 5월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전개된 대북 제재 국면에서 정부가 대북 현금 제공사업인 금강산 관광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조 사장은 상사인 현정은 회장과 함께 북한을 설득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북한의 관광사업 파트너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측도 통일부 차관 시절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통했던 조 사장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서는 북측이 관광재개를 위한 회담을 제의하고 적극적인 대화공세를 펴면서 상황이 바뀌는 듯 했다.

조 사장도 지난달 초 "관광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이 반드시 성사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8일 열린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의 3대 요구사항에 대해 전혀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정부도 북한이 신변안전 등을 확실히 보장하지 않는 한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그러다 북한이 최근 개성.금강산 관광 관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조 사장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조 사장이 금강산 관광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은 다하셨는데 결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사의를 표명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사장의 사임은 오는 24일 주주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