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형편에 엄마와 같이 노숙자 생활을 하던 소녀가 TV에 나와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매일 똑같은 이불에서 자고 싶어요. " 이날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매일 덮고 자는 이 이불이 그 소녀에게는 그렇게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3년 전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으러 세종병원을 찾았던 어린이에게 "수술이 잘 돼 건강하게 됐는데 고국에 돌아가면 무얼 하고 싶니?"라고 물어봤다. 그녀는 "학교 가는 것이 소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심장병으로 인해 학교에 다닐 처지가 아니었던데다 국가 특성상 여자가 학교에 가는 것이 중죄로 다스려지는 만큼 이 같은 희망은 이뤄질 수 없었다.

이라크에서 사지가 절단된 심장병 소년이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왔다. 지금도 해맑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심장병 수술을 받으면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행복해 했다. 당시 사지가 절단됐는 데도 "심장병 수술을 받아 행복하다"는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그러나 그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잘사는 국가보다 더욱 높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들어 어린 아이들이 구걸로 연명하는 나라,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을 찾고 쓰레기를 팔아 돈을 버는 그런 생활이 어떻게 그들을 좌절시키지 않았을까. 그들은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있다는 그 사실에 고마워한다고 한다.

이라크 소년과 대화할 때 나는 과거의 나를 회상했다. 한국전쟁 무렵,친구들과 미군을 쫓아다닌 소학교 시절의 나는 초콜릿 한 두 개에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지난 반세기 동안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지금에 이른 우리,과연 소소한 일상에서 감사를 느끼고 있을까? 나조차도 과거의 나를 잊고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잊은 듯 싶다.

내가 태어난 것,가족과 함께하는 것,건강하다는 것,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것,밥을 먹는 것,같은 이불에서 매일 잔다는 것,우리에겐 아주 소소하고 당연한 일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데서 그다지 감동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감사한 마음도 들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일상을 소원으로 여기고 원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던 공기였지만 환경오염으로 변질되고 그로 인해 무수한 질병과 문제들을 야기시켜 공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일상의 당연한 것들이,소소한 감동이 어느 순간 변질될 때 그 중요성을 늦게 깨달아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sjhosp@sejong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