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세운 이병철 前회장, 남다른 기업가 정신으로 세계 초일류기업 일궈



[Focus] '호암' 탄생 100주년…"기업은 돈을 벌어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

올해는 삼성그룹을 창업한 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호암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부잣집 막내 아들로 태어나 한국과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모두 중퇴하고 오직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성적이 50명 중 35~40등을 오간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질이 공부가 아닌 사업에 있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길로 나서 큰 성공을 이룬 것이다.



그는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37개 기업을 만들며 오늘날 세계적 그룹으로 성장한 삼성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목표를 내걸고 사업을 해왔다는 점이 다른 기업인들과 다른 점이다.

⊙ 실패 딛고 일어선 인생역정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합방한 1910년 유교적 가풍을 지닌 집안에서 태어난 호암은 어릴적 서당을 다니며 인성을 쌓아갔다.



일찌감치 결혼해 자식 셋을 둔 호암이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26살이 되던 해 노름을 하고 돌아온 어느날 호암은 달빛에 비친 세 자식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그러던 중 사업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판단한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300석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차린 것이 그의 첫 번째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서 돈을 벌자 호암은 운수업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당시 마산에 운송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운수업에도 성공한 호암은 부동산 으로 눈을 돌린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마산 인근의 땅을 사들여 1년 만에 200만평의 땅을 가진 대주주가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37년 중 · 일 전쟁이 터진다.



전쟁이 터지자 땅값은 급락하고 은행은 대출을 중단했다. 호암이 맛본 첫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인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라는, 요즘으로 말하면 무역회사를 설립한다.



사업에 실패한 후 전국을 돌며 깨달은 것이 부족한 물자를 수입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1939년에는 술을 제조하는 양조장사업도 시작했다.

사업이 잘돼 꽤 많은 돈을 번 호암은 해방이 되자 1948년 서울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



더 큰 사업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무역이 잘되며 삼성물산은 단숨에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역회사로 성장한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그는 모든 서울의 재산을 잃고 만다.



하지만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이 사업가는 1951년 대구에 남겨진 재산 등을 모아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과연 무역업만이 기업가가 해야 할 일인가'라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민을 하던 중 그는 일대 결단을 내린다.



'제조업에 진출하자'는 결심에 따라 1953년 그는 제일제당을 설립한다.



당시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제일제당이 만든 설탕은 낮은 가격으로 수입제품을 급속히 대체하며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먹을 것 다음에 입을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회사가 제일모직이다.

그의 다음 구상은 비료공장이었다. 농업을 주로 하는 나라에 비료공장이 전혀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1967년 비료공장을 완성하지만 정치적 사건에 얽히며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고 말았다. 두 번째 실패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난다.



전자산업이 미래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그는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한다.



단순히 미래산업일뿐 아니라 머리가 좋고 교육수준이 높은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사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자산업을 성공으로 이끈 호암은 1983년에는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오늘날 전자강국 한국의 기초를 쌓았다.



그는 1987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37개의 회사를 세웠다.

⊙ '사업보국 · 인재제일' 경영 철학

호암의 경영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보국이다.



그는 항상 "국가가 없으면 삼성도 없다. 기업은 사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얻은 교훈이다.



이 사업보국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그에게는 사업을 잘되게 하는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설탕, 의류, 비료, 전자제품 등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을 값싸게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성공법칙이라고 생각했다.



호암은 "단순히 돈만 벌겠다고 해서 벌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사회에 기여하면 돈은 저절로 벌린다"고 말해왔다.



이런 철학 때문에 삼성은 사회에 해가 될만한 사업은 손대지 않았다.



호암은 제일제당으로 돈을 벌던 시절에도 독점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리자는 임원들의 제안에 대해 "기업이 할 일이 아니다"며 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두 번째 경영이념은 인재제일이었다.



호암은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스스로 "인생의 80%는 인재를 찾는데 썼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삼성은 진대제, 윤종용, 황창규, 이윤우 등 스타급 CEO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삼성출신 직원들은 어디서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은 합리 추구다.



이 말은 모든 사업이 시대에 맞아야 하며 사업을 할 때는 철두철미한 점검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경영에 대해 "시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욕심을 억제하고 자신의 능력과 그 한계를 지켜야 한다.



또 우연한 행운을 잡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제2, 제3의 예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과거 중 · 일전쟁이 일어나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을 모두 날리고서는 투기는 피해야 하고, 국내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서울에 있던 재산을 잃었을때는 제2, 제3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교훈으로 얻은 것이다.



삼성그룹이 나섰던 사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한 것이 없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같은 호암의 경영철학이 제대로 이행된 데 따른 것이다.

호암은 또 항상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게 호암의 생각이었고 그의 마지막 사업도 삼성그룹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삼성종합기술원 설립이었다.

김용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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