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세기의 승부사 이병철
새 사업 진출땐 90가지 넘는 사항 직접 점검
철저한 '준비 경영'
반대 뚫고 반도체사업, 30년 만에 克日
'창조 경영' 토대 일궈
[호암 탄생 100주년…다시 길을 묻다] (上) "왜 일본을 못이겨" 72세에도 시퍼렇던 도전정신

"기업가는 기업을 구상해 그것을 실현시키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업을 단계적으로 일으켜 나갈 때 더 없는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의 흥분과 긴장과 보람,그리고 가끔 겪는 좌절감은 기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

1986년에 펴낸 '호암자전'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밝힌 기업가 상(像)이다. 제일제당,제일모직의 잇따른 성공으로 한국 최고의 거부가 됐음에도 호암의 관심은 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대 후반에 사업의 길로 들어선 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일으켰다.

◆그룹 명운 걸고 반도체 사업 진출

"모두 식당에 모이라고 해." 1982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호암은 미국 방문에 동행한 임직원들을 스탠퍼드 코트 호텔 식당으로 불러모았다.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다. 임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회장의 호출이 반도체 사업 건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인데 왜 회장은 그리 집착을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도 문제지만,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암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자부문 임직원들의 패배의식부터 질타했다.

도대체 일본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호통이었다. 호암은 이날 오랫동안 준비해온 결심을 마침내 공식화했다. "세계 시장을 놓고 우리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일본을 이길 자신이 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 "

당시 호암의 나이 72세.한 차례 위암수술을 받고 고희를 넘긴 나이였지만 그룹의 명운을 걸고 또다시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것이다. 젊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던,그리고 항상 배우고자 했던 '선행(先行)의 나라'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승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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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창조경영으로 승화된 20세기 준비경영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0년 1월8일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현장.호암의 아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생애 처음으로 CES를 찾아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 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표정에는 '일본을 넘어서라'는 선친의 유지를 현실로 만들어낸 데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는 듯했다.

호암이 타계할 당시 14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200조원을 넘어섰고,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일본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는 경영실적을 올렸다. 이날 이 전 회장도 "자기 위치를 정확히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며 호암과 비슷한 얘기를 강조했다.

호암이나 이 전 회장이 동시에 언급한 '위치'라는 단어에는 현상에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닌,새로운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인식과 도전 과제를 정립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되,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개척해서 찾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호암의 정신적 유산이 대(代)를 달리해서도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철저한 준비와 실행전략 덕분이다. 호암이 생전에 손을 댄 사업 중 판단이나 시행착오로 실패한 사업은 하나도 없다.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 같은 경우는 정치적 변수가 빚어낸 돌발적 결말이었다.

호암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 90가지가 넘는 사항을 치밀히 점검하고,100% 자신이 없으면 가지 않았다. 전자에 이어 금융 조선 엔지니어링 화학부문이 단기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전에 충분한 시장조사와 내부 역량 점검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21세기 '창조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의 글로벌 경영은 한국 최대 역동기를 돌파했던 20세기형 '준비경영'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조일훈/김용준 기자 jih@hankyung.com

숫자로 본 삼성그룹(2008년말 기준)

매출:191조원
순이익:11조7000억원
총자산:318조원
총투자:27조원
종업원:17만명(해외포함 27만명)
그룹 내 박사수:4865명
계열사:64개
직수출:799억달러
대한민국 전체 수출비중:18.9%
시가총액:192조원
(상장사 전체의 23.2%, 2009년 8월 말 기준)
해외 거점:68개국 477개사무소 및 지법인
월드베스트 제품(세계시장 점유율 기준): 2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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