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원전 항공 방산 등 '3대 신성장 산업'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돌파와 4만달러 진입의 길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내에 쏟아져 나올 2300조원 규모의 원전과 700조원의 항공,70조원의 방산 물량 중 무역 규모 10위권인 우리가 최소 10%(300조원)만 차지해도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00조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조달러(약 1150조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부문별 확고한 전략과 특단의 국가적 · 산업적 협력 없이는 어렵다. "전문 인력과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강력한 외교력으로 뒷받침한다면 시장 공략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원자력 발전

한국의 원전 건설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홀로서기'를 못하는 게 흠이다. 한국의 원전 기술 자립도는 95%.외관상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부족한 5%가 원전 설계와 운영에 없어선 안 될 원천기술이란 점이다. 원전 설계코드와 원자로 냉각재펌프, 원전 제어계측 장치 등 세 가지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대부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국내에서만 원전을 짓는다면 이 같은 사실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원전 수출을 늘리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경부 관계자는 "원전 발주국이 기술 이전을 요구할 경우 원천기술 공급사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가 반대하면 수출은 꿈도 못 꾼다는 얘기다. 한국은 이미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2004년 중국,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기술을 이전하는 나라에 원전 사업권을 주겠다'며 부친 국제 입찰에서 한국은 아예 원천배제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의 대주주가 일본 도시바란 점도 눈에 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일본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부족한 5%를 반드시 채워야 하는 이유다. 이주상 원자력발전기술원장은 "원전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원천기술 국산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국내 원전 수요만 감당하는 데도 내년까지 전문 인력이 2600명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원전 관련 학과는 유사 학과까지 포함해도 10개가 채 안 된다.

항공산업

세계 완제기 시장은 2020년 3000억달러를 거쳐 2030년 직후부터 6000여억달러(약 690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보잉사와 록히드 마틴사,유럽의 EADS사(프랑스 독일 스페인 합작사) 등 3개사는 이미 1996년부터 4년간 기업 인수 · 합병(M&A)을 통한 기종별 · 국가별 독점체제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반면 국내 완제기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군용기 위주의 완제기 개발을 위해 1999년에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설립했지만 민간 기업에 대한 KAI 지분 매각 등이 지체되면서 적절한 투자 시기를 놓쳤다. 그동안 항공산업 기반 마련에 실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지난 21일 19억달러(2008년 기준)인 국내 항공산업 매출을 2020년까지 200억달러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문제는 구체적인 투자계획과 강력한 육성 의지다. 항공산업이 '대통령의 세일즈 품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형준 KAI 경영기획실장(상무)은 "내부적으로 100석 규모의 중형 민항기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항공사업의 성공은 정부의 지원 확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항공기 하나 개발하는 데는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가고 투자 회수 기간도 10년가량 걸리기 때문에 민항기 개발을 위해선 정부 · 학계 · 기업 간의 공동 연구 · 개발(R&D) 및 투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내 항공산업을 속도감 있게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파이낸싱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웅이 한서대 항공교통관리학과 교수는 "KAI의 전투기 부문 완제기 제작 경험과 대한항공의 부품 제조 및 정비 능력 등을 키우는 동시에,정부 주도하에 최소 2조~3조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위산업

세계 방위산업 시장 규모는 600억달러(약 69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실적은 11억7000만달러,세계 17~20권이다. 2012년까지 세계 10대 방산 수출국으로 올라서는 게 1차 목표다. 하지만 말이 10위지 이른바 방산 선진국인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수출액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정책위원장(안양대 경영학과 교수)은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4대 필수론'을 편다. 채 교수는 방산업체에 대한 규제 철폐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작업 인원과 작업 시간까지 통제하는 구조로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우기 어렵다는 것.적정 이윤 보장과 자발적인 원가 절감이 어우러진 선순환 구조를 갖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한 외교력도 절대적인 요건이다. 방산은 일반 비즈니스와 달리 외교력이 바탕이 돼야 수주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채 교수는 "R&D도 국방비 대비 1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수출은 권역별 맞춤형 시장전략을 추천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는 공동 개발과 고등훈련기를,아시아권은 함정 장갑차 훈련기 중심으로,중동권엔 항공기 전차 자주포를 집중 수출해야 한다는 것.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은 "지난해 우리나라 무기 수입 규모는 1조원을 넘었다"면서 "방산을 고도화한다면 1인당 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완/주용석/장창민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