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사람 중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발표 전에 미리 원전 관련 주식을 산 사람이 없어요. 솔직히 우리도 가능성을 낮게 봤거든요. "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며칠 전 들려준 얘기다. 한수원은 원전 건설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회사다. 작년 말 UAE 원전 수주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런 회사가 왜 수주를 자신하지 못했을까. 이 직원의 대답은 이랬다. "해외에서 원전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한국이 수주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더 이상한 거예요. "

원전은 첫 수주가 어려운 사업이다. 단 한번의 사고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는 원전의 특수성 때문이다. 오랜 운영 경험이 쌓이고 국제적 신뢰를 얻지 않으면 수주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그동안 세계 원전 시장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캐나다,5개 국가가 독점해 왔다. 한국은 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한국도 이제 제대로 된 '플레이어'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UAE 수주가 열어 놓은 가능성은 어마어마하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될 원전은 430기,금액으로 2조달러가 넘는 규모다.

원전 수출 효과는 엄청나다. 원전 1기의 수출 가격은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에 달한다. NF쏘나타(대당 2만달러) 25만대,30만t급 초대형 유조선(척당 1억1000만달러) 45척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주해 원전 3대 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계획대로 되면 원전 수주로만 4000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156만7000명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중소 부품업체들도 기대감에 들떠 있다. 원전 1기를 짓는 데 200만개가량의 부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다. 원자력 기자재업체인 우진의 유계현 사장은 "수출 기회가 많아질수록 (부품업체들에) 굉장한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목표 달성에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30여년간 무사고 운전 경험을 쌓아온 데다 가격 경쟁력도 높다는 근거에서다. 지경부 관계자는 "미국 프랑스 등이 발주하는 원전은 자국 업체가 가져가겠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선 한국형 원전의 승산이 높다"고 말했다.

이미 곳곳에서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원전 협력 선언'이 대표적이다. 향후 20년간 40기의 원전을 발주할 예정인 인도에 한국 원전 관련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최동석 KOTRA 뭄바이사무소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인도에서 원전을 수주한 적이 있는 프랑스를 한국이 제쳤다는 소식에 인도인들이 놀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터키 요르단과는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고 핀란드 베트남 폴란드 같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미국도 한국 원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기당 5억달러 안팎인 중소형 '스마트 원전'도 유망하다. 한국은 내년말 한국형 스마트원전 개발을 완료해 수출상품으로 키울 예정이다. 카자흐스탄 등이 벌써부터 수출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덕상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원전 발주 물량의 29%가량(124기)이 중국에 몰려 있다"며 "80기 수출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중국 시장을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군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부족한 원전 관련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용석/뭄바이(인도)=서욱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