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 온 패션학도였던 한국인 남녀 학생은 1990년대 초 전 세계 패션인이 집결하는 '뉴욕컬렉션' 개최 장소인 브라이언파크를 바라보며 각자 이렇게 다짐했다. "언젠가는 이곳에 내 이름을 건 컬렉션 무대를 선보일 거야."

그로부터 15년여가 흐른 2008년 9월 이 두 학생은 '앤디앤뎁'이란 브랜드로 뉴욕컬렉션 봄 · 여름 무대를 장식했다.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 · 윤원정씨 부부(사진)의 얘기다. 당시 미국 패션계에선 그들의 옷에 '업타운 시크(uptown chic)'란 수식어를 달아줬다. 한국 디자이너가 만들었지만 뉴요커들은 진정으로 '뉴욕패션'의 감성을 느꼈다는 평가를 내린 것.

첫해 컬렉션 무대를 열기 전부터 영국 편집숍의 바이어가 쇼룸에 진열된 상품을 보자마자 사갔을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1999년 여성복 '앤디앤뎁'을 론칭한 지 10년 만에 뉴욕컬렉션 무대에 섰고,그 후로 네 번째 뉴욕컬렉션에 도전 중이다. 앤디앤뎁은 현재 미국,영국,일본,프랑스,레바논 등 해외 각국 유명 백화점과 편집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수동 앤디앤뎁 작업실에서 만난 김석원 앤디앤뎁 대표와 윤원정 이사는 다음 달 13일 뉴욕에서 열리는 2010년 가을 · 겨울 컬렉션 준비로 분주했다. "세계 4대 컬렉션 중 뉴욕이 가장 먼저 시작하기에 늘 1년을 앞서가다 보니 정신이 없네요. 컬렉션 준비와 함께 국내 매장에서 판매할 올 봄 · 여름 신제품까지 준비하느라 연말연시를 잊은 채 살고 있어요. "

둘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로 앤디앤뎁을 이끌고 있다. 동갑내기 부부로 둘 다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2년 먼저 유학 간 윤씨가 졸업 후 뉴욕에서 일을 시작했고,김씨도 2년 뒤 졸업해 "같이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는 말로 프러포즈를 했다. 1996년 웨딩마치를 울린 둘은 꿈을 이루기 위해 패션업체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갔다.

"직장에서 인정받고,연봉도 꽤 높게 받았어요. 하지만 윤 이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죠.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패션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한국발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왔어요. "

1999년 아방가르드(전위적)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이 유행했던 국내 패션시장에서 심플하고 미니멀한 뉴욕 스타일의 앤디앤뎁은 패셔니스타의 집결지인 청담 · 압구정동에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뉴욕 브랜드로 착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고난의 세월을 겪었다. 윤 이사는 "부티크 매장 하나였을 땐 강남의 한정된 고객을 상대로 옷을 만들어 팔면 됐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회상했다.

10년이 지난 후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보고 남성복 라인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 문을 적극 두드리고 있다. 이번 뉴욕컬렉션 무대는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크다. 한국패션문화쇼룸 사업이라는 정부의 후원이 뒷받침되기 때문.김 대표는 "국내 6명의 디자이너가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쇼룸을 열고,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 후원까지 얻어 세계 패션피플에게 한국의 브랜드를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개인 디자이너로선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정부 후원 덕택에 브랜드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둘은 "올해 해외시장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음 달 최고급 브랜드만 판매하는 백화점 니먼마커스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앤디앤뎁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글=안상미/사진=정동헌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