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실적,환율효과,더블딥(이중 경기침체) 우려,출구전략,녹색 테마,승자의 프리미엄,400억달러 원전 수주….'

올 한 해 주식시장을 장식한 주요 키워드들이다. 연초에는 약세장이 펼쳐져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됐지만 IT(정보기술)와 자동차 등 대형 우량주인 블루칩들의 1분기 성적이 예상을 깨고 잇따라 '어닝 서프라이즈'(깜짝실적)를 기록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당시엔 기업들의 실적 호전이 달러당 1400원을 넘는 원화 약세를 반영한 환율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2~3분기 성적표도 좋게 나오면서 시장에선 블루칩들의 '승자 프리미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키워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점을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실제 주요 대표주들은 각종 신기록을 쏟아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82만5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증권사들이 제시하는 목표주가가 100만원까지 올라갔다. 이 회사의 올 순이익도 작년 5조5259억원보다 78%나 급증한 9조8365억원으로 추정돼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울 기세다. LG화학도 25만원대까지 올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고,현대차 역시 12만원대를 오르내리며 사상 최고기록을 계속 바꾸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주식을 사들였던 원동력도 바로 이들 블루칩이다. 외국인들은 국내 대표주들의 1분기 깜짝실적을 확인하자 지난 4월부터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 유가증권시장에서만 모두 32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해 주식을 처분한 규모(33조6000억원)만큼을 되사들인 셈이다.

우량주에 집중한 외국인들의 투자성적도 괜찮은 편이다. 올해 외국인들의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의 주가 상승률은 평균 92%에 달해 거의 '더블' 수준이다. 기관과 개인들이 많이 사들인 2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각각 79%와 21%)을 훨씬 웃도는 성적이다.

증시 비중이 큰 블루칩들의 강세로 코스피지수는 3월 초 1018선에서 9월엔 1718까지 치달았다. 코스피지수는 이후 다소 주춤해졌지만 연말을 앞두고 대형 우량주들이 다시 힘을 내는 양상이어서 내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내년 증시에서 가장 투자유망한 종목으로 IT · 자동차 등의 블루칩을 1순위로 꼽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외국계 증권사들은 이들 우량주의 실적개선이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라며 내년 코스피지수 최고치를 2000 선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량 대형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살아나면 국내 산업 전반에 훈풍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업체는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중소 부품 · 장비업체들의 일거리와 고용이 늘어나는 등 상당한 '스필오버'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를 수주했다는 소식으로 대형 중공업 · 건설 회사와 중소 코스닥 업체들이 대거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의 해였던 올해 증시는 말그대로 강세장을 뜻하는 황소장(불 마켓)이었다. 호랑이 해인 새해에도 블루칩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가 이어져 호랑이가 질주하는 것처럼 증시가 '기호지세'로 달리기를 기대한다.

손희식 증권부 차장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