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좋아하는 광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광고를 꼽겠는가?그 광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어떤 것인지는 감히 예측해 볼 수 있다. 크게 나눠 감동적인 것,감각적인 것,재미있는 것 이렇게 세 가지다.

감동적인 것이라면,대부분 기업의 철학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기업PR 광고가 될 것이다. 감각적인 것이라면,보통 트렌디하고 유니크한 제품의 론칭을 알리는 제품PR 광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은,시대의 아이콘을 패러디하거나 기발한 유머로 유쾌함을 전하는 무겁지 않은 세일즈 광고일 것이다. 최근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감동적인 광고 한 편이 있다. 감히 수작이란 표현을 더하고 싶은 기업PR 광고.바로 '두산중공업의 발전편'이다.

무수한 갈대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인사를 한다. 사막의 모래도 바람의 움직임에 몸을 싣는다. 곧 바람이 풍차를 움직인다.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갔더니 우리는 운 좋게도 풍력에너지를 개발해낼 수 있었다. 그 에너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데운다. 하얀 날개를 단 천사 복장의 드레스를 입은 꼬마 소녀가 등장한다. 사랑스러운 꼬마는 푸른 에너지가 만들어낸 노란 빛 속에서 해맑게 웃으며 수줍게 춤을 춘다. 광고의 서정적인 비주얼과 함께 작위적이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한 시구와 같은 카피도 함께 등장한다. "자연을 따라갔더니 희망이 닿았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푸른 에너지를 만들어갑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두산 중공업" 이라는 슬로건 카피가 등장한다. '우리의 푸른 기술이 결국 지구의 가치를 높인다'는 두산중공업의 기업철학.이 큰 뜻이 고작 브라운관 속 한 편의 TV 광고를 통해 수백만명의 고객과 공유될 수 있는 이유는 15초 동안 전개된 일련의 서정적인 비주얼과 의미 있는 카피의 흐름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영상 매체의 화려하고 빠른 메시지 전달 방식에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도서 출판물의 판매 부수는 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광고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광고의 역동성과 거리가 먼 정적인 인쇄 매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전개 방식이 '시(詩)'의 작시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명시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쉽게 풀어 쓰여져 한 구절,한 구절을 독자가 소리 내 따라 읽을 수 있고 끝까지 읽으면 무언가 깊고 큰 것을 독자의 가슴 속에 내려준다는 점이다. 마치 윤동주의 '서시'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련의 감상 과정을 이해하는 데 쓰이는 개념이 바로 '시 세계'다.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지나가지만 끝까지 읽는 순간 우리는 시인이 구성해 놓은 시 세계 속에 빠져 들어 큰 공감을 얻게 되고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의 기업PR광고 발전편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겨우15초간 TV로 한 편의 광고를 감상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해가 잘 드는 도서관 창가 책상에 앉아 고요히 한 편의 시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두산중공업의 발전편에는 기업PR를 위한 감동적인 광고 크리에이티브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공감가는 컨셉트,감동적인 카피,잊지 못할 비주얼로 중무장한 좋은 광고들은 꽤 많다. 즉 능력 있는 광고인에 의해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기업의 이미지 세계'를 담아낸 광고들은 많다. 하지만 일련의 광고 크리에이티브 속에 '기업의 철학 세계'를 담아낸 광고는 극히 드물다.

명시가 작가의 시 세계를 통해 독자와 특정 가치를 공유한다면 명광고는 특출한 크리에이티브로 기업의 철학 세계를 전달해 고객이 기업의 이미지를 이해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광고는 온전히 기업 본연의 브랜드 정체성을 고객에게 인지시키는 동시에 고객에게 사랑받는 광고로까지 기억되는 것이다.

유장선 (광고칼럼니스트, 엠포스 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