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유능한 사업가지만 식구들에겐 형편없는 가장이다. 툭하면 약속을 어긴 탓이다. 이혼 위기에 몰린 가운데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겠다고 다짐한 로봇인형 '터보맨'을 사기 위해 12월24일 아침 백화점으로 갔으나 물건은 이미 동나고 없다.

백방으로 뛰지만 가까스로 손에 넣을 즈음 번번이 문제가 생긴다. 결국 못구한 하워드는 아들과의 마지막 약속이라도 지키려 성탄절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간다. 어쩌다 인간 터보맨이 된 하워드가 아들에게 상품으로 터보맨 인형을 주는 순간 다시 훼방꾼이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선물 특수를 둘러싼 가족애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솔드 아웃(매진,1996년)'의 개요다. 올 연말 미국과 영국에선 영화 속 하워드만큼은 아니라도 고생깨나 한 부모가 많았다는 소식이다. '주주 펫(Zhu Zhu Pets)'이란 로봇 햄스터가 인기를 끌면서 구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로봇 햄스터는 실제 햄스터처럼 손바닥만한 크기의 장난감 로봇.털이 아닌 부드러운 헝겊으로 만들어 촉감이 좋은데다 손으로 건드리거나 코를 어루만지면 살아있는 듯 찍찍거리거나 끙끙거리는 등 온갖 소리를 낸다. 게다가 미끄럼틀을 타거나 자동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닌다.

세피아란 미국 회사 제품으로 지난 5월 첫선을 보인 이래 미국에서만 1100만개가 팔린 것도 모자라 중국 광둥성 장난감 공장에선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일했다는 보도다. 공급이 워낙 달리다 보니 개당 8~10달러짜리가 30달러까지 오른 곳도 있고,월마트에선 1인당 하루 1개로 판매를 제한했을 정도였다고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계속 바뀐다. 1958년 훌라후프나 59년 바비 인형,83년 양배추 인형처럼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도 있지만 87년 닌자 거북처럼 애니메이션 히트에 따른 캐릭터 상품인 수도 있다. 분명한 건 2005년 다마고치에 이어 올해 로봇 햄스터가 히트한 데서 보듯 점차 살아 움직이는 생물 형태로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로봇 햄스터의 경우 집과 차,물레방아 등 부속품 판매까지 더하면 1년 매출만 3억~4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조만간 관련 게임도 출시되고 40여종의 다른 모양도 나온다니 세피아사는 물론 중국의 납품업체들도 돈 방석에 앉을 게 틀림없다. 내년엔 또 어떤 기발한 상품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