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TV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클리셰(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 중 하나는 여주인공의 혼전(婚前) 임신이다. 그로 인한 갈등을 빼면 드라마가 안될 정도다. 축복받지 못하는 임신일 경우 예전엔 툭하면 교통사고 등으로 유산시켰지만 출산이 국가 과제인 요즘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뜻밖의 임신 내지 상대의 변심으로 온갖 험한 꼴을 당해도 아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남자나 시부모의 마음이 돌아서서 결혼하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대부분이다. 임신한 걸 주위사람들과 아기 아빠가 알게 되는 과정 또한 참으로 흡사하다.

책이나 수첩에 끼워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들키는 게 그것이다. 임신 초기인 만큼 형체조차 뚜렷하지 않은데도 불구,이 사진만 보면 다들 생각을 바꾼다. 실수였을 뿐 사랑하지 않는다던 남자도 돌아오고(KBS '내사랑 금지옥엽'),펄펄 뛰던 부모도 대책을 강구한다(MBC '살맛 납니다').

뱃속의 아기 사진이 신기한 건 틀림없다. 어렴풋이 형태만 드러나도 놀라운데 눈과 입까지 선명할 때의 느낌은 형언하기 어렵다. 부모 마음은 다 같은지 태아 사진을 공개하는 연예인이 늘어나는가 하면 해외에선 태아가 'V'자를 그렸다거나 예수 형상을 닮았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그래도 그렇지, 주요 선진국에선 3회 이내인 초음파 진단을 우리는 평균 10.7회나 한다고 한다.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병원협회 등에 자제를 당부했다. 초음파가 태아에게 나쁘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잦은 검사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별 문제 없는데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의도라는 설도 있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견해도 있다. 피해 사례는 뚜렷하지 않지만 초음파가 담석을 부수는 등에서 보듯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다.

초음파 진단의 목적은 아기의 성장과 건강을 살피는 것이다. 식약청의 경우 무작정 줄이라고 하기보다 가능한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겠지만 임신부 역시 꼭 필요하지 않은데 기념사진 찍듯 자주 촬영하는 건 삼갈 일이다. 연예인들의 태아 사진 공개도 지양했으면 싶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겠지만 불임으로 애태우는 사람들도 있는 까닭이다. 어쩌면 태아 역시 태어나기도 전에 사람들 눈에 띄는 것보다 엄마 뱃속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할지 모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