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우리나라 원자력 과학자들은 국제 학회 등에서 왕따를 당했다. 한국이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를 자체 기술로 설계 제작하겠다고 발표하자 선진국에서는 "다목적 원자로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것(다목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는 등 코웃음을 쳤다. 당시의 우리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당연한 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때에는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험용 원자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과학자들의 선택지는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뿐이었다. 여러 대의 원자로를 설계,제작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연구용 원자로 국산화 목표를 내걸고 기술개발에 몰두한 끝에 마침내 1995년 3월 하나로를 선보였다. 사업 승인을 받은 지 10년 만에 우리기술로 개발한 원자로가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를 '쓸모 없는 장치'로 폄훼하던 선진국 과학자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국산 연구용 원자로가 드디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요르단의 연구용 원자로 건설 국제입찰에서 최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앞으로 중대한 이변이 없는 한 내년 3월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가 1959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Ⅱ'를 도입한 지 50년 만에 원자로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6위의 원전 강국으로 자리잡았으며,세계최고 수준의 원전 설계 · 건설 · 운용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해외 원자로 시장에서는 그동안 단 한 건의 수출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상업용 원자로는 물론 연구용 원자로의 국제 입찰에도 몇 차례 도전했지만 기존 원전 강국들의 텃세에 눌려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연구용 원자로의 설계에서부터 시공과 운영 지원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을 일괄 공급하는 계약체결이 갖는 의미가 각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국내 개발이 제한된 핵연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독자적인 한국형 원자로를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국산 원자로를 비롯 원전분야를 수출산업화하는 일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전 중인 연구로 240여기 가운데 80% 정도가 20년 이상 된 노후 설비여서 향후 15년 동안 최대 20조원 규모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연구로 시장 전망은 아주 밝은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판 녹색성장 분야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상업용 원전시장을 서둘러 확보하는 것이다. 원전수주는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안되는 만큼 정부 당국은 정책적 · 외교적 지원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들이 원전 건설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4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 사업을 놓고 우리나라를 비롯 프랑스 일본이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원자로 분야에서 거둔 성가가 원전 수출로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원전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