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의 볼썽사나운 구태가 결국 다시 재현됐다. 한나라당이 어제 내년 예산안을 다룰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 구성을 밀어붙이려 하자 이에 반발한 민주당 의원 40여명이 여당소속의 예결위원장 자리를 기습 점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의 몸싸움과 거친 말들은 이제 새삼 주목거리도 못된다. 앞서 정기국회 때부터 쟁점이 되어온 '4대강 예산 국회'에서 그간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빚어진 충돌이다. 야당을 제대로 설득할 정치력도 없이 시일만 허송한 여당의 리더십 부재도 딱하지만,결국 육탄전의 빌미를 제공한 민주당은 연말 임시국회가 파행할 경우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최근 신선한 변화의 모습도 보였다.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낙연 의원이 그런 경우다. 이 위원장은 17조7000억원에 달하는 농수산위 예산중 4대강 관련 사업비로 분류된 저수지 둑높이기 예산 4000억원이 걸림돌이 되자 이를 중재하고 심의통과를 주도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정작 민주당 안에서는 입장이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상임위원장으로서 여야간 협상을 유도하고 합의를 유도한 것에 대한 당내 불만 때문이었다. 이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장의 역할이 무엇이며,어떤 자리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나온다. 어제 기습점거에 나선 것처럼 강경파도 있지만 합리적인 주장도 적지 않다. 박지원 정책위의장도 '계수조정 소위를 구성해야 하고 들어가서 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주장은 반영하지 못한 채 삭감할 것도 못한다'는 논리로 협상을 통한 의지 관철(貫徹)을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목소리가 강경논리에 묻혀 버린다는 점이다. 일본 민주당을 방문해 그들처럼 민생정치로 적극 나가겠다고 다짐해온 당지도부의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지금 예산심의가 안되면 피해는 서민 · 중산층에 집중된다. 예산뿐 아니라 사업별 집행을 위한 부수법안도 심의 처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조기 정상화를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