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파→ 케인즈파→ 신고전파→ 통화주의→ 합리주의…

시장 효율성 놓고 학자들간 끊임없는 논쟁 거듭하며 발전

[Cover Story] 경제학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근대경제학의 역사(시장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의 1776년 저서 ‘국부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의 핵심 개념이다.

국부론이 나오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보호무역정책을 쓰면서 해외의 금과 은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국부를 증진시키려는 중상주의가 큰 흐름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 질서를 강조하며 자유로운 교역(국내외를 포함)을 통해 국부를 증진시키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 경제학자들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과 생산량의 균형이 나타나고 그 결과 완전고용도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 한계생산,한계비용 등의 한계 개념을 통해 소비와 생산의 균형을 도출하고 수학으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수리경제학을 발전시켰다.

고전학파는 사상적인 면 뿐 아니라 수학적 방법론 등에서도 현대경제학의 초석을 닦았다.(‘한계’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꼭 선생님에게 질문해서 배우세요)

⊙ 대공황 해법 내놓은 케인스학파

그러나 1929년10월말 뉴욕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불어닥친 대공항은 시장 중심의 고전학파 이론에 의구심을 낳게 했다.

현대경제학도 이 무렵에 탄생했다.

영국의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저서 ‘일반이론’ 등을 통해 고전학파의 한계점을 지적하고,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자는 저축이 아니라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에 의해 결정되며,물가와 임금은 신속히 조절되는 게 아니라 오르기는 쉽지만 아래로 떨어지기는 어려운 하방경직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고전학파 이론을 비판하며 시장을 믿고 기다리다가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려면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이 지출함으로써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른바 유효수요이론이다.

케인스의 주장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른바 ‘뉴딜 정책’에 반영되면서 30년이상 경제학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 “정부 개입은 비효율 양산”

케인스학파의 부상으로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한동안 역사에서 퇴장하는 듯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설명하기 힘든 경제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중동국가들이 석유가격을 담합해 인상하자 경기 침체기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지출을 줄이면 경기를 침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면 물가가 오르게 되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졌다.

케인스학파는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못했다.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그룹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철학을 계승한 통화주의 학파였다.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카를 브루너,앨런 멜처,슈워츠 등은 화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이론을 내세웠다.

그들은 케인스가 주장한 재정정책(정부지출 규모로 경기를 조절하는 정책)의 효과는 일시적이고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고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통화 증가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정부는 가능한 시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했다.

‘합리적 기대이론’도 70년대 이후 득세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예상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통화량을 늘리면 사람들은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대처하기 때문에 기업 투자여력이 생각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따라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케인스학파가 주장한 대로 정부지출을 늘리는 등의 인위적인 정책은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밀턴 프리드먼의 제자인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교수에 의해 집대성돼 시카고학파를 이루게 된다.

시카고학파 이론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이 됐다.

이 이론을 기반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대세였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의 개막이었다.

⊙ 금융위기 이후 다시 논쟁

그러나 2008년 불거진 세계 금융위기는 시카고학파의 기를 한 풀 꺾이게 만들었다.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세계 각국은 무작정 돈을 풀고 보는 양적확대 정책을 동원하면서까지 경기 부양에 나서는 한편 위기의 재발원인을 투기자금의 과도한 국가간 이동으로 보고 단기 자금의 국가간 이동을 규제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주류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신케인스주의자(네오 케인지언)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은 정부가 시장에 어느정도 개입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의 원리는 여전히 경제이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전 타계한 폴 새무얼슨 교수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케인즈경제학을 접목한 신고전파 종합이론을 확립했으며 자유무역의 신봉자였다.

새무얼슨 교수는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일단 완전고용이 달성되면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진화론,심리학 등 접목하기도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를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경제학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합리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론도 나타났다.

진화론과 심리학을 활용해 그동안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비합리적 현상에 대한 답을 내놓고자 하는 진화경제학이 대표적이다.

진화경제학은 경제 진화가 생물 진화와 구조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보고,경제제도의 핵심주체인 인간과 기술의 바탕이 되는 지식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 경제이론이다.

진화경제학자들은 생물 진화가 기후조건 서식지 같은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다른 진화에도 영향을 받는 것처럼 인간의 경제적 행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형성된다고 본다.

즉 사람들은 지식외에 믿음,감정 등을 갖고 있고 이것이 모여서 관행 또는 제도의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한 진화경제학은 고전경제학과 달리 시장에는 하나의 효율적인 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의 선택에 따라 효율성 외에 다른 조건에 의한 다수의 균형점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행동경제학도 이와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