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생각나는 연극이 한 편 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싱이라는 사람이 쓴 '성자의 샘물'이 그것이다. 옛날에 도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비록 구걸에 의지해 살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삶을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과 짝을 이뤄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어릴 때 보았던 아름답게 빛나던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성자가 한 사람 나타났는데 그는 기적의 치유를 행할 수 있는 샘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도울 부부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이들을 치료해 두 사람 다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않았던 불행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믿었던 남편이,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던 아내가,사실은 지극히 평범하고 초라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대한 좌절과 원망으로 시력을 다시 잃고 말지만 아름다웠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화해를 한다. 수년 뒤 샘물을 들고 다시 나타난 성자가 두 사람의 눈을 다시 치유해주겠다고 하지만 도울 부부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를 거부한다. 마치 장자의 꿈을 연상시키는 우화 같은 이야기다.

세상을 살다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세상을 아름답다고 믿으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개인사뿐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의 과거와 관련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지난달만 해도 그렇다.

식민지 시대 일제에 협력한 수천명의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자 그들의 후손과 보수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거나 진보진영의 정치적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부 보수단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친북인명사전' 또는 '좌익'인명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과거의 기억을 둘러싼 이들의 싸움이 점입가경에 이를수록 국민들의 정서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작곡가의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떠올려야 하고 먼저 간 대통령들에 대한 묵념을 하면서 친북이나 좌익이니 하는 무서운 단어들을 떠올려야 하므로.

국가나 민족의 과거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또한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가 개입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공의 신화를 만들어 내거나,과거의 사실을 은폐 · 조작하는 방법 등을 통해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을 주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기억의 정치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모두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관찰자의 주관적 의지에 따라 과거의 사실이 취사선택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국가나 민족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현재의 사회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되고 재구성되는 사회적 기억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오늘의 가치와 도덕률을 가지고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윤리적 심판(moral judgement)을 내리는 것을 역사가의 사명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역사가들이 드물어졌다. 과거는 과거 나름의 질서와 가치에 의해 움직여진 세계였으므로 그런 관점에서 '이해'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할 무렵 대한민국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대일본제국만 존재했던 역사적 공간과 상황을 이해해주고,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오직 사회주의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꿈과 이상을 이해해주면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