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목적은 진실 추구에 있나, 실용적 가치에 있나?

[논술 기출문제 풀이] 2009학년도 서울교대 정시논술 문제 풀이
소수(素數)를 볼 때마다 박사가 떠올랐다.

소수는 풍경 어디든 숨어 있었다.

슈퍼마켓의 가격표,문패에 적힌 번지수,버스 시간표,햄의 유효 기간,아들의 시험 점수…….

그 숫자들은 모두 표면적인 역할에 충실하면서 이면에 숨겨진 본래의 의미를 고집스럽게 견지하고 있었다.(중략)

“실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그래서 더욱 수학의 질서가 아름다운 거야.”

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수의 성질이 분명해졌다고 해서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그러나 아무리 세상을 등지고 있다 해도,수학의 발견이 결과적으로 현실에 응용되는 사례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타원 연구는 행성의 궤도를 밝혀주고,아인슈타인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우주의 형태를 제시했지.소수 역시 암호의 기본으로 전쟁을 돕고 있어.한심한 일이지.그러나 그것은 수학의 목적이 아니야.수학의 목적은 오로지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

박사는 진실이라는 말을 소수만큼이나 중요시했다.

“자,여기에다 직선을 하나 그어 보렴.”

언제였던가,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박사가 내게 말했다.

광고지에 젓가락을 대고 연필로 직선을 그렸다.

“그렇지.그게 직선이야.자네는 직선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자네가 그은 직선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그렇다면 두 개의 점을 최단거리로 이은 선분인 셈이지.원래 직선의 정의에는 끝이 없어.한없이 뻗어 나가는 선이지.

하지만 한 장의 종이에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고,자네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일단 선분을 직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거야.그리고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꼼꼼하게 끝을 갈아도,연필심에는 굵기가 있어.따라서 여기 있는 직선에는 너비가 있지.즉 넓이가 생기는 거야.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실제 종이에 진정한 의미의 직선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야.”

나는 연필 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밖에 없어.”

박사는 자기 가슴에 손을 대었다.허수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랬던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 현상,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표현할 수 있어.아무 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 오가와 요코,「박사가 사랑한 수식」중에서 발췌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과학은 유용한 사회적 직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생겨났다.

물리학은 도구와 기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발전하였다.

물리학의 한 중요한 분야인 역학(mechanics)을 ‘기계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원래 기계에 관한 학문이었다는 증거이다.

지렛대,바퀴,경사면 등은 인류의 최초의 위대한 발견이며,이것들이 실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해서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지난 20년 동안 전기에 관한 과학이 크게 진보한 것은 교통,통신,도시와 가정의 조명,그리고 상품의 경제적 생산의 수단으로서 전력을 적용한 것과,원인으로 또는 결과로,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목적들이며,설사 그것이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그것은 그 자체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사사로운 용도로 오용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학교 교육은 다음 세대로 하여금 그것을 공적인 성격의 과학적,사회적 관심과 올바르게 관련짓도록 할 책임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화학은 염색과 표백,금속 다루기 등에서 생겨났고,근래에 와서는 산업에 무수하게 많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수학은 고도로 추상적인 학문이 되어 있다.

그러나 기하학은 원래 ‘지측학’(地測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파악하기 위하여 숫자를 세고 또 측정을 하는 데 있어서 수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 용도는 원래 이 목적을 위하여 숫자가 발명되었을 때에 비하여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고찰은―어떤 학문의 역사를 따져 보더라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개체에게 반복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요,또한 초기의 주먹구구식 단계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그것은 능동적인 작업 활동을 과학 공부의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더 크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기회는 사회 공부에 있어서도 과학 공부에 못지않게 크다.

인간의 집단생활의 과거를 보나 미래를 보나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수학이건 과학이건,도대체 일체의 학문은 실제적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며,실제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죤 듀이,「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발췌

게으름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에 적절한 시절은 우리 시대가 처음인 줄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는 치열한 생활을 자랑하고 있는데,치열한 생활이란 사실상 소동의 생활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상징 또한 경쟁이고 보면,뛰어났다고 과시하는 온갖 발명 역시 슬기의 발명이라기보다는 모두 속도의 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삶이 온전한 의미에서 인간다운 삶이 되려면 거기에는 느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마냥 빈둥빈둥 한가롭기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쁘게 힘써 일하는 것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나 힘씀은 역시 쉼에서 비롯되고 쉼에서 그쳐야 하는 법이며,위대한 업적이나 크나큰 기쁨은 뛰면서는 이루어질 수도 음미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주에 경주를 거듭하는 것은 산에 산을 포개어 쌓는 일이 아니라 바람에 바람을 포개는 헛된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중략)

섬머셋 모옴의 「면도날」에 나오는 주인공은 생각할 여유를 얻기 위해 택시 운전수가 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택시 정류장에 있는 운전수들을 보십시오.

잠을 자고 있거나 서로 지껄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 평온하지 않습니까? (중략)

인간은 기계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덩어리가 커서 시간은 한참 걸렸지만 소화는 해 내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기계조차도 인간의 숭고한 영혼을 죽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를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는 것을 보면,속도 역시 소화해 내리라 믿습니다.

속도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형언할 수 없는 이념의 세계,우리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열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고 생각은 다음”이라는 격언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마는,이념을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또한 언제나 많았습니다.(중략)

세상의 이런저런 덧없는 사건들이 잠시 동안 우리의 귀를 멀게 하고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머지 않아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 자끄 러끌레르끄의 강연 중에서 발췌

<논제>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나 있는 각각의 관점을 비교하여 요약하고,두 관점 중 하나를 택하여 제시문 (다)의 주장을 옹호 또는 비판하시오.

⊙ 출제의도

2010학년도 정시논술 비중이 축소됐다.

수시에서 논술과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정시논술은 그 중요성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교대는 여전히 정시논술이 변별의 중요한 과정이다.

지금까지 서울교대 논술이 출제된 과정을 분석하면 서울교대 논술은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선 단순 논제 제시형에서 복합 논제 제시형으로의 변화했다.

과거 서울교대 논술은 단순히 제시문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춘 교육적 관점,교사의 역할을 묻는 문제였다.

이 유형은 교대 논술의 가장 정형적이고 기본적인 틀로써,서울교대 역시 이러한 구조를 주도했고 그 형식안에서 문제가 출제됐다.

하지만 최근 서울교대 논술은 일반대학의 논술과 같이 통합적 관점에서의 복합적 제시문 출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수시논술에서 출제된 것과 같이 논제를 학교측에서 세밀하고 분리해 제시한다.

즉 ‘제시문의 이해-제시문의 연결성 찾기-자신의 생각 정리’라는 단계적 논리 흐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일반적인 교육논술의 유형은 유지되고 있다.

교대논술은 제시문 내용에 있어 교육적 관점이 포함된 경우,또 제시문의 해석과 응용에 있어 교육적 관점을 요구하는 경우로 분류된다.

어떤 경우라도 교대 논술은 예비교사로서의 입장,교육적 관점에서의 적용이 유용하다.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지만,지금까지 서울교대 논술 문제의 대부분이 교육적 관점을 직접적으로 묻거나,아니면 간접적인 적용이라도 가능한 문제였다.

교대 논술을 준비한다면,반드시 논제의 교육적 관점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2010학년도 정시논술 역시 이번 수시와 마찬가지의 흐름을 보일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시간에는 작년 정시논술 문항을 통해 최근의 변화된 서울교대 논술의 문제 스타일을 익히고,교대 논술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교육논술’의 특징을 알아보도록 한다.

⊙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는 박사가 소수와 진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학을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사는 수학이 실제의 유용성을 반드시 담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스스로가 깨닫는 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런 수학은 사회에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보다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다고 본다.

즉 박사는 수학의 목적이 자기 내면의 진실을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학문)을 통해 실제 생활에 응용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재창조하려는 움직임과는 상반된 견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제시문 (나)는 수학의 목적은 인간의 실용성,즉 실제적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 생활에 쓰임이 있는 것,인간의 효율성과 능동성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것,그것을 수학으로 본다.

즉 학문(수학)의 목적은 스스로의 내면적인 성찰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활용과 발전에 있다는 것이다.

제시문 (다)는 인간 삶의 목적과 방법에 있어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사회의 빠름과 속도의 문화가 여유와 관조,느림의 삶으로 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인간의 나태함과 게으름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다만 삶의 변곡에 있어 휴식과 여유,관조의 자세가 매우 중요함을 말한다.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고,기계를 부리고 있는것처럼 인간은 현대사회의 시간도 충분히 인간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우리 삶의 이면을 성찰하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논제분석

(1)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나 있는 각각의 관점을 비교하여 요약하고,(2)두 관점 중 하나를 택하여 (3)제시문 (다)의 주장을 옹호 또는 비판하시오.

논제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논제는 비교논제이다.

제시문 (가)와 (나)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는 기본적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묻는 논제다.

따라서 이번 논제에서도 간략한 공통점 정도는 쓰는 것이 좋겠다.

(가)와 (나)는 모두 수학이 개인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수학의 정의,수학의 목적(기능),인간의 역할 등에 있어 상반된 관점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제시문(가)와 (나)를 대등적으로 요약해서 열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늘 강조하듯,단순한 요약의 나열은 좋은 비교 구조라 할 수 없다.

비교라는 문제는 요약의 열거 이외에 좀 더 친절한,압축적이고 간결한 차이의 드러냄을 요구하는 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와 (나)가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 관점을 분명히 부각해서 서술하는 것이 좋겠다.

우선 수학의 정의에 있어 (가)는 수학적 정의는 완벽하게 형상화될 수 없다.

반면 (나)는 인간의 실제적 효율을 증대시키는 일체의 수리,논리적 사고구조를 수학으로 본다.

수학의 목적과 기능에 있어서도 (가)는 진실을 밝히는데 있지만,(나)는 사회의 발전,더 나은 체계로의 효율적 이행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인간의 역할에 있어서도 (가)는 수학은 인간의 내면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나,(나)는 인간은 수학의 혜택을 입는 소극적,수동적 존재이다.

(2)논제는 두 관점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하나를 택함에 있어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것이 논제에서 ‘택하라’는 것을 너무 가볍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문제에서는 반드시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따라서 이 두 입장을 적절히 절충하려 시도하거나,새로운 제 3의 관점을 가져오는 것은 논제 이탈에 해당한다.

자신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은 좋으나 논제에서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부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논제 일탈의 대표적 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자신이 두 관점 중에서 어느쪽을 택했는지 명시적으로,두괄식으로 밝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왜 이 관점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간략한 이유를 부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3)논제에서는 (다)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이다.

이른바 평가형 논제다.

역시 마찬가지로 옹호와 비판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은 곤란하다.

적어도 옹호와 비판 중 주류적인 의견이 어느쪽인지는 논술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의 관점,평가의 대상,평가의 근거가 필요하다.

여기서 (다)는 제시문 (가)와 유사한(친한) 입장이다.

인간 스스로의 내면적 성찰과 관조를 통해 느림을 추구하는 것은 (가)에서 수학이 인간의 외형적 발전과 실생활의 응용보다 진리,진실의 발견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따라서 (가)를 선택했다면 (다)는 옹호될 것이고,(나)를 선택했다면 (다)는 비판될 것이다.

어느 입장을 선택했는지는 썼으니,주로 이 부분에서는 왜 (다)가 옹호되고,왜 (다)가 비판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 되겠다.

이때 옹호와 비판의 근거찾기가 중요하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적용 방식은 근거 활용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우선 (다)를 옹호한다면,오늘날 현대인들이 성장지상주의,물질만능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스스로 성찰하고 내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 된다.

현재 시대가 지나치게 빠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를 비판한다면,오늘날 현대사회의 현실적 제약을 주되게 제시하면 되겠다.

스스로 내면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지만,여유의 일관된 추구는 오히려 사회에서의 ‘도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관점들에서 교육적 관점이 간단하게라도 언급되면 금상첨화다.

김윤환 S·논술 선임연구원 pogara@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