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제학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이 14일 9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지난 70년 가까이 세계 경제학계를 리드해온 경제학자가 세상을 뜬 것이다. 새뮤얼슨은 시카고대,하버드대를 거쳐서 1940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강의를 시작한 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경제학계의 '학장' 역할을 해 왔다.

새뮤얼슨의 업적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정리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미시경제학은 1920~193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이론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내용은 단편적으로 산재(散在)돼 있었는데,새뮤얼슨은 그것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1930년대 케인스혁명으로 거시경제학이 성립했지만,케인스 자신의 게으름 등도 원인이 돼 케인스 경제학을 체계화하는 작업은 새뮤얼슨 같은 후학들에게 넘겨졌다. 나아가 새뮤얼슨은 재정학,국제무역.국제금융 등 방대한 주제를 다룬 수많은 논문을 썼다. 새뮤얼슨이 이론의 발전에 이용한 것은 수학이었다. 새뮤얼슨은 말로 복잡하게 제시돼 왔던 경제이론을 수학을 이용해 간명하게 체계화함으로써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바탕을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새뮤얼슨은 1970년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새뮤얼슨이 수학을 통한 경제학의 '과학화'에만 매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쓴 경제원론은 경제학 책으로서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 첫 출간 이래 지금까지 제19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장수하는 교과서가 됐고 전 세계 27개 국어로 출간돼 약 400만부가 팔렸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은 새뮤얼슨에게도 '좌절'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새뮤얼슨은 시장과 국가가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혼합경제'를 주창하는 진보파(liberal) 학자다. 그가 활동을 시작한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생각이 압도적이었지만,그 후 '순수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새뮤얼슨류의 진보파가 학계에서 주류 자리를 내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위축되기는 했지만,학계의 지도를 그려본다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다수파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새뮤얼슨류의 혼합경제 이론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많은 절충을 한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그런 절충을 통해서만 다수파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새뮤얼슨의 약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경제이론의 절충이 가능한 것은 현대 경제학이 혼합경제를 주장하는 측이건 순수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측이건 그 분석적 내용에 있어서 공유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는 바로 새뮤얼슨을 필두로 한 경제학자들이 사상적 차이와 무관하게 경제학을 '과학화'하려는 노력을 해 왔기 때문이다.

새뮤얼슨이 경제학의 역사에 있어서 스미스나 케인스 같이 큰 획을 그은 학자로 평가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가 도입한 수학적 방법도 무리한 오남용(誤濫用)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경제학의 '과학화'는 경제학자들 간 합의의 영역이 다른 사회과학보다 훨씬 넓어지는 바탕이 됐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같은 나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서 새뮤얼슨 같은 학자가 당장 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한국처럼 사회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 '과학적' 경제이론의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의 능력은 턱없이 모자라더라도 '과학적' 분석에 근거해서 합의의 영역을 늘려가는 작업은 한국의 실정에서 더욱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 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